[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수행을 위해 산사를 찾아 템플 스테이를 하고, 선방을 찾아 좌정을 하는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그저 바람에 불과한 일일 뿐이라고 여기는 일반인들이 많을 줄로 안다.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며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수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원불교의 '영육쌍전'이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영육쌍전이란, 영과 육, 즉, 종교성으로 대표되는 정신활동과, 의식주로 대표되는 물질적인 것이 다 부족함없이 온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학자인 멀치아 엘리아데의 방대한 저작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서로 '성과 속'이 꼽힌다. 이 책에서 엘리아데는 '성스러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종교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대해 '성은 곧 속의 반대'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렸다. 성이란 자고로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반대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들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원불교의 영육쌍전, 동정일여 사상은 이와 같은 성과 속의 이분법적 개념을 완전히 뒤집은 종교사의 혁명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과거의 종교가 형이상학에 너무 치우쳤다고 봤다. 그리고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현대에 와서는 또 너무 형이하학에 치우쳐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되어 인류의 고통이 한이 없을 것을 내다봤다. 

따라서 이제 돌아오는 세상에 필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이 균형을 이루는 참 문명 세계임을 선포하고 이를 위한 새 회상건설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소태산 대종사가 대각을 이룬 이듬해에 추진한 것은 바로 '저축조합' 창설이었다. 대종사는 모든 단원이 술과 담배를 끊어 그 돈을 저축하도록 하고, 매 끼니 쌀 한술씩을 모아 저축하게 했으며, 그 다음해에는 바닷물 이 내왕하는 간석지를 개간하여 논을 만드는 방언공사에 착수했다. 

깨달은 이후 견성하는 법을 설하고 선법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회상을 창립하여 사업을 벌이고, 방언 공사를 하게 한 것은, 앞으로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는 참 문명세계를 열어가고자 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큰 그림이었다. 대종사는 대중이 공동작업을 할 때는 언제나 현장에 나와 친히 모든 작업을 지도하며, "영육의 육대강령 가운데 육신의 삼강령(의식주)을 등한시 않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출역(작업)을 시키노라"고 말했다. 만일 정당한 이유없이 공동작업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나와서도 일을 대충하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꾸짖었다.

원다르마센터에서 근무하며, 현지인들에게 설교와 선지도를 하지만, 마늘 파종 시기가 되면 함께 마늘을 심고, 김장철이 되면 같이 배추를 뽑아 김치를 담근다. 훈련객들이 오면 설거지 당번을 돌아가면서 하고, 훈련객이 떠나간 숙소청소를 함께 하는 것이 '노동'이 아니라, 원다르마센터를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영육을 쌍전하게 하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일을 떠나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왕 원불교 회상에 들어왔으니, 영과 육, 공부와 일, 동과 정이 둘이 아닌 큰 공부길을 찾아보자. 

/미주총부법인

[2019년 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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