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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공부 병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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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중훈 교무
  • 승인 2019.01.15
  • 호수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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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열반 얻고자 하는 것은 욕망 아닌 '아름다운 서원'
일과 공부 병행하며 죽음의 보따리 잘 준비해야

[원불교신문=박중훈 교무] 2019년 기해년 돼지해가 시작됐다. 해가 거듭돼 나이가 50대 후반에 이르렀다. 누구나 이 나이가 되고 보면 대체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과 화두를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나이와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요한 숫자가 바로 '40'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천도품에서 "조만(早晩)이 따로 없지마는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 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아니하리라"하시며 나이 40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대한민국에서는 나이 40이 되면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아 건강관리를 하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그렇다면 '나이 40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들 것인가? 필자는 지난날 설교단상에서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100년 전 40세'와 '21세기의 40세'는 평균수명으로 볼 때 다르다"며 60세 은퇴 이후가 보따리 챙길 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지금은 나이 40에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보따리에 담아야 할 것들에 그 이유가 있다. 천도품 3장의 말씀은 "스스로 열반의 시기가 가까움을 깨닫거든, 정신 통일하는 외에 다른 긴요한 일이 없나니라. 원심을 놓아 버리는 데에 전력하라. 착심을 여의지 못하면 자연히 참 열반을 얻지 못한다. 최후의 시간이 이른 때에는 더욱 청정한 정신으로 일체의 사념을 돈망하라"로 요약된다. 

선배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나이 60을 넘어 황혼은 찰나의 순간에 다가온다고 한다. 원불교 교도라면 누구나 '수도인', '공부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다. 그러므로 이번 생을 마칠 때 참 열반을 얻고자 하는 욕심은 과한 욕망이 아닌 '아름다운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원을 이루고 싶다면 젊고 힘이 있을 때부터 일과 공부를 병행해 몸과 마음, 그리고 행동이 순숙되어야 한다. 어떻게 순숙시킬 것인가? 필자는 일상생활 속의 훈련으로 가능하다고 배웠다. 

일상생활 훈련의 실행은 전산종법사의 신년법문인 '상시응용주의사항의 실천'에 의한다. 상시응용주의사항에 대해 소태산 대종사는 "유무식 남녀노소 선악 귀천을 막론하고 인간 생활을 하여 가면서도 상시로 공부할 수 있는 빠른 법이다"고 했고, 대산종사는 "대종사께서 평생을 통해서 하신 공부길이요 영생의 공부 표준이며 누구나 스스로 성불하여 영겁에 불퇴전이 되도록 하신 법이다"라고 했다. 이 공부를 통해 정신을 통일해 원망심과 집착심을 내려놓고 오직 청정한 일념을 챙길 수 있을 때, 죽음 보따리 준비가 잘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어찌 보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굳이 나이 '40'을 말씀해주신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인생의 주기를 보면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교단과 사회에서 중요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받는 시기가 도래한다. 특히 결혼한 부모들은 이 때 자녀가 중학교, 고등학교 학업기에 들어가므로 특별한 짐 하나를 더 짊어진다. 따라서 삶의 현장은 더욱 치열해진다. 뿐만 아니라 결정하고 추진해야 할 일들 하나하나는 가벼운 것들이 아니어서 몸과 마음이 경직된다.

나와 가족, 교단과 사회를 위해 보은행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사건건 시비이해를 구분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물질문명을 더욱 가까이 하게 되면서 눈뜨면 습관적으로 뉴스와 SNS를 확인해야 하는 등 모든 일상은 일의 성공을 위해 몰입한다. 물론 자기관리 없는 성공은 오래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을 훗날에야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필요에 의한 관심이었지만 관심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강화되면 내 의지로 쉽게 조절할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업력이라고 한다. 

생각과 관심이 온통 밖으로 향해 있지만 일을 대하고 경계를 대할 때마다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하는 공부심. 하루를 마칠 때면 지난 일들을 반조하여 본래 없는 그 자리를 회복하려는 공부심. 이처럼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습관이 되고 업력이 된다면 죽음의 보따리를 잘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정읍교당

[2019년 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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