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전국 각처를 두루 돌아다닌 한 사람이 대종사를 뵙고, '강산을 두루 돌아다녔으나 산 가운데는 금강산이 제일이었고, 사람을 두루 상대하였으나 대종사 같은 어른은 처음 뵈었나이다'라고 찬탄하며 말하자, 대종사는 '그대가 어찌 강산과 인물만 말하는가. 고금 천하에 다시없는 큰 도덕이 이 나라에 건설되는 줄을 그대는 모르는가' 라고 말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 '큰 회상'이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종사는 9인 제자들에게 방언 공사를 시킨 뜻을 설명하며 또 이 '큰 회상'이라는 말씀을 한다. '우리가 건설할 회상은 과거에도 보지 못하였고, 미래에도 보기 어려운 큰 회상이라, 그러한 회상을 건설하자니 이렇게 할 일이 많다.'

크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통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막히고, 한쪽에 치우친 시대였다면, 돌아오는 세상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서로 통하고, 밝고, 원만한 시대이다. 과거종교와 같이 깨달음만 중시하고, 세간 생활을 불고해야 한다면, 그 법의 자비훈풍을 받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또, 정신의 삼강령만 중시하고, 육신의 삼강령인 의식주를 나몰라라 한다면, 그 생활 속에서 원만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정신과 육신을 아울러 병진하는 시대다.

새 세상을 열어갈 새 회상의 법은 수양, 연구, 취사가 삼발이의 세 다리처럼 고루 균형을 잡는 법이며,  도학과 과학이 조화를 이루고, 동과 정, 공부와 사업이 병진되는 법이다. 태양이 중천에 이르면 그 광명이 시방세계에 고루 비치는 것과 같이, 남녀노소 선악귀천 구별 없이 누구나 정성만 들이면 법 받아갈 수 있으며, 천여래 만보살을 배출하는 회상이다. 모든 교법이 두루 넘나들어 세계가 한집안으로 화하게 하는 회상이다. 이렇게 원만한 종교가 바로 우리 원불교가 나아가야 할 지표요, 방향이다.  

원다르마센터에 있다 보면 간혹 불교, 혹은 여타의 영성단체를 이미 거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영성을 추구하며 선 도량들을 찾아다니지만, 정작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의식주의 생활기반이 건실하지 않은데, 오직 도에 심취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간혹 본다. 또 선만 하면 궁극적인 자리에 갈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과학의 칼자루를 쥐고서 현명하게 휘두를 줄 아는 도학의 주인, 동할 때와, 정할 때 공부가 끊이지 않는 대 도인, 공부를 하며 사업도 성공시키는 큰 실력자가 되게 하는 것이 원불교의 가르침이다.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면 수양, 연구, 취사 삼학의 병진, 신앙과 수행의 병진을 통해서만 진정한 심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기회가 되면 말하곤 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오랜 고행끝에 깨달음을 얻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손톱을 깎고 세수를 했으며, 저축조합과 방언공사를 했다고….

영산회상의 도반들이여, 이러한 큰 회상 만났을때, 큰 회상에 신맥을 대고  큰 공부길  잡아 나가자. '다시없는 큰 도덕이 이 나라에 건설되는 줄을 과연 그대는 아는가?' 

/미주총부법인

[2019년 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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