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활용은 원불교 교리 중 사대강령의 하나다. 불법을 천하의 큰 도라 밝히고 불법으로 주체삼아 완전무결한 새 회상을 준비했던 소태산 대종사는 불법의 활용에 앞서 혁신을 단행했다. 

'재래와 같이 불제자로서 불법에 끌려 세상일을 못할 것이 아니라 불제자가 됨으로써 세상일을 더 잘하자는 것이니'라고 언급한 '불법활용'의 내용을 보면, 불법이 우수하지만 대중의 현실에 보편적이지 못했던 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종사는 과감히 혁신하기에 이른다. 

〈조선불교혁신론〉을 보면 대종사는 재래불교 혁신을 시대화·생활화·대중화로 밝혔다. 시주·동령을 폐지하고 정당한 직업 하에 교화사업을 펼쳤으며, 결혼도 자율에 맡겨 법으로 구속하지 않았다. 또한 불제자의 계통을 재가출가의 차별 없이 지행의 고하에만 따르게 했으며, 현실 생활에서 간단없이 공부하게 했다. 

이렇게 개혁된 사례를 초기 불법연구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불법연구회 회원들은 양잠을 운영하고 엿장사를 하며 함께 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구타원 이공주 종사가 살던 집은 훗날 '청하'라는 그의 아호를 따서 '청하원'이라 불리고,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가 살던 집은 '정신원'이라 불렸다. 익산에 부지를 마련해 처음부터 익산 총부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던 공간이 지금의 중앙총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모여 함께 교단운영자금을 만들고 공부했다. 재가들에게만 경제력을 의존하지 않았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재가출가의 구분이 따로 있지도 않았고, 시주나 동령 대신 자력생활을 가르쳤다. 출가자의 결혼도 자율에 맡겼으며, 일 속에서 공부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교단은 대종사가 개혁한 새 불법의 제도가 활용되지 않는 듯하다. 보은헌공이 교도의 의무이긴 하지만, 교당운영을 대부분 교도들의 헌공에 의지하고 있다. 여성 교역자가 크게 감소해 위기라고까지 평가하면서 아직도 정녀제도의 해결점을 내놓지 못한다. 교당에서는 교화운영위원회 등의 기능이 살아나지 못하고 주임교무의 재량으로만 운영되며, 부직자와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대종사가 내놓은 교화단 제도는 상시응용주의사항과 교당내왕시주의사항 점검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종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원불교는 생활 종교이며, 재래불교의 제도를 개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종사가 개혁한 불법, 새 불법의 활용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나. 불법을 생활에 맞춰 혁신했던 사례가 지금은 오히려 재래불교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초창기 대종사의 본의를 살리는 제도, 시대에 맞춰가는 제도, 생활에서 법이 나타나는 제도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불법활용이 되려면 시대와 생활에 맞는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혁신을 이미 대종사가 100년 전에 이뤄 놓았다. 

[2019년 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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