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심법 〈정전〉을 응용하고
문답 감정 해오를 얻는 공부 ③

오덕진 교무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마침표를 찍으면 도가 아니듯이(道可道非常道), 정답은 없고 명답만 있듯이(無有定法) 스승은 똑같은 질문을 하는 열 명의 제자에게 각각 다른 답을 하고, 한 제자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오전과 오후의 답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문답은 공부의 방향로를 제시할 뿐입니다. 구전심수(口傳心授; 문답 감정 해오) 정법 아래 각자 산 경전 큰 경전으로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공부인: 지난해에 교장 선생님이 학교 시설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교무실을 옮기게 됐어요. 당연히 우리 뜻과는 상관없었죠. 그런데 옮겨놓고도 예산이 없어서 에어컨과 싱크대를 설치하지 못했어요. 에어컨은 더운 여름이 지나서야 달았고, 싱크대는 1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싱크대가 너무 작은 데다 싸구려 티가 나는 비메이커에요. 싱크대가 너무 작으니 온수기가 들어가지 않아 싱크대 바깥쪽에 붙여 설치했는데 너무 눈에 거슬려요. 이렇게 발주한 행정실 과장에게 서운하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직장이다 보니 막 퍼부어대지 못하고 조심하고 있어요. 이것도 온전한 건가요?
▷지도인: 다 온전하죠. '온전함은 이런 것'이라는 전제를 놓고 보면 말이죠. 

▷공부인: 마음이 이렇게 요란한데요?
▷지도인: 온전함을 어떤 상태로 보고 있네요. '화가 나면 온전한 것이 아니다. 서운하면 온전한 것이 아니다. 참으면 온전한 것이 아니다'라고. 그럼,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야 온전한 거네요. 돌이나 나무처럼 말이죠. 

▷공부인: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아무런 감정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네요. 작은 싱크대를 설치하니 서운하고 화가 나는 건데 그런 상황이어도 요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지도인: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定)을 세우자'에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다음에 쉼표가 있어요. 마음 작용의 원리가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란함이 없는 상태만 내 마음이 아니라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이 내 마음 작용의 원리에요. 

함께 살면 시비 이해가 생기는 것이 정상이고
그것으로 공부하는 것이 인생 공부, 마음공부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이불 속에 수염을 넣고 주무시느냐, 빼고 주무시느냐 질문하자 할아버지가 밤새 수염을 이불 속에 넣어도 불편하고 빼도 불편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질문을 받기 전에는 아무 분별이 없다가 분별이 생겨서. 그럴 때는 그 말 듣기 전 마음(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진공眞空)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공부(묘유妙有)가 필요해요. 
'싱크대가 설치되기 전에 아무 분별이 없었는데 작고 메이커도 없는 싱크대가 설치되니까 묘하게 화가 나는구나' 알아차리고 웃을 수 있는 것이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 용심법(用心法) 선(禪)이겠죠. 

▷공부인: 제 심지는 원래 싱크대가 작아서 화가 난다 안난다하는 분별이 없건마는 작은 싱크대가 설치되는 경계를 따라 화가 난다는 분별이 있어진 거네요. 제가 원래 화내는 사람이 아니라요. 
▷지도인: 나의 시비(是非)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비도 사람 봐가면서 묘하게 나옵니다. 그것이 마음의 성질, 마음 작용(=진리 작용)입니다.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의 성질(일체 중생의 본성)이 그런 것이죠. 

▷공부인: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작용, 사람 마음의 성질이 그런 것이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행정실 과장이 원래 좀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상황 따라 이런 마음도 저런 마음도 나오는 거군요. 
▷지도인: 인연의 시작은 곧 시비 이해 공부의 시작인 것 같아요. 프랑스에 '하인 앞에 영웅 없다'라는 속담이 있어요. 함께 살면 시비 이해가 생기는 것이 정상이고 그것으로 공부하는 것이 인생 공부, 마음공부인 것 같습니다. 

/교화훈련부

[2019년 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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