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서원관에 부임했다. 걱정스럽다. 심히, 부담된다. '방 정리'라는 대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사 하는 것이 힘들어서? 아니다. 난 이사에 익숙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담의 연유는, 사용할 방에 '빼내야' 할 가구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사용하던 방'을 '지도교무 방'으로 사용하게 된 터라, 남는 책상과 침대를 빼야 한다. 이 일이 대업인 이유는, 바로 침대의 무게 때문이다. 침대가 무시무시하단다. 풍문으로 들었다. 엄청 무겁단다. 남자교우 4명이 꼬박 붙어 들어야 한다고, 하루에 한 개씩만 옮겨야 기력이 쇠해지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걸까." 여자치곤 나도, 힘이 센 터라 침대 한구석을 들어 보았다. 꼼짝도 안한다. "이거 정말 무겁구나." 이 침대를 낮선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빼내야 한다니, 침대 무게만큼 내 마음도 침잠했다. 나는 부탁하는 것이 어렵다. 의외로 낮을 엄청 가린다. 아. 이렇게 이야기 하면 피식 웃으면서, 안 믿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이다. 나름 섬세한 자아를 지녔다. 그러니 모르는 교우들을 붙잡고 나를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어려운 일이다.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중앙중도훈련원에서 간사근무를 한 예비교무를 떠올렸다. 전화를 한다. 나는 풀이 한껏 죽은 목소리로 침대 나르는 일을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교우 아주 흔쾌히 도와준단다. 함께 도와줄 교우도 섭외해 준다고 했다. 드디어 마음이 폭삭 놓인다. 고마운 마음이 사무쳐, 그 예비교무에게 한마디 했다. "너무너무 고마워. 내가 가구 날라준 친구들 다 맛있는 것 사줄게!"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교무님, 이제 서원관 오시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모든 교우들을 평등하게 사랑해주셔야죠. 왜 가구 날라준 교우들만 챙기려고 하세요." 머릿속에 정적이 흐른다. 

최근 몇 년간 겪은 일 중 가장 충격적인 일이다. 이 교우의 말이 맞다. 너무 맞는 말이라 충격을 받았다. '아니, 얘가 이런 말도 할 줄 알아?' 내가 이 교우에게 이런 말을 들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 교우로 말할 것 같으면, 눈알 굴러가는 소리부터 머리 굴러가는 소리까지 다 알겠던, 귀여운 간사였다. 그래서 되려,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도 자란다.' 아이가 자라서 맞는 말을 한다. 나를 깨우쳐준다. 그동안 내가 이 사람을 아이로 여겼을 뿐이다. 

대종사님은 "그대들이 어찌 남의 일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는가. 참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남의 시비를 가벼이 말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법문했다. (〈대종경〉 인도품 35장) 

나 스스로는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작 상대도 성장하리라곤 생각지 않았음을 반성한다. 나의 편견 나의 무지 나의 오만이었다. 상대에 대해서는, 예전의 기억으로 바라본다. 나 혼자 과거에 살고 있는 셈이었다. '과거의 기억'으로 남의 일에 대해 판단하고 평가하고 간주하는 거다. 상대에 대해, 남의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자.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이미 그 사람이 아니다. 

/교학대서원관

[2019년 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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