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안세명] 제237회 임시수위단회에서는 〈불법연구회 통치조단교약〉의 단원규칙과 세칙을 모본으로 단 조직 명칭을 부분적으로 바로잡고 정수위단회가 매월 교화단회를 갖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대종사의 교화단법은 왜 지난 100년을 지내오면서 자리 잡지 못하고 이제야 새삼스럽게 주목받는 대상이 되는 것일까? 김경일 수위단회 중앙단원으로부터 대종사의 교화단 정신과 앞으로의 교화단 운영방향에 대해 듣는다.
김경일 중앙단원은 교화단을 통한 전법교화가 제생의세 경륜을 이단치교로 실현해 가는 것임을 밝혔다.

-교화단, 소태산의 교화법이라 할 수 있는가
소태산 대종사가 세상을 교화할 때 십인 일단의 교화단 조직으로 시작했다. 대각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이 일이다. 〈대종경〉 서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처음 교화를 시작하실 때 진실하고 신심 굳은 아홉 사람을 먼저 골라 회상 창립의 표준제자로 삼았다. 그것이 교화의 시작이고 교화단의 시작이다. 이 단원들과 같이 방언공사와 법인성사를 거치면서 회상 창립의 역사가 시작됐다.

십인 일단의 단 조직은 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을 고르게 훈련할 빠른 방법이다. 또 공력은 항상 아홉 사람에게만 들이면 되는 간단하고 쉬운 조직이라 했다. 이는 합하면 하나가 되고 펼치면 시방세계, 우주를 상징한다.

대종사의 교화법은 달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교화단법의 취지대로 창의적으로 실행하면 된다. 앞으로 우리가 만대에 가져갈 것은 교전과 교화단이다. 대산종사는 "교단의 모든 조직이 다 없어져도 교화단법은 남는다"고 했다.

-소태산의 경륜인 교화단, 왜 구현하기 어려웠을까
대종사는 십일 인단을 조직하고, 그 단원들과 함께 방언공사와 법인성사를 이뤘다. 이때 이미 단 조직 운영의 시범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로 계속하지 못하다가 원기16년 〈불법연구회 통치조단규약〉을 제정하면서 교화단 운영의 자세한 구상을 밝혔다. 일제의 탄압과 감시로 교화단법을 전면적으로 실행할 수 없었지만 그 의지의 상징성은 충분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대종사 열반 후 정산종사는 〈대종경〉과 교서결집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또한 한국전쟁의 혼란기 속에서도 교단을 응집하고 유일학림을 만들어 인재양성에 전력했다. 교화단을 구체화할 여력이 거의 없지 않았나 싶다.

대산종사는 국가의 경제발전 추세에 부응해 교세를 크게 확장하면서 교단체제 확립에 주력했다. 교화단에 대하여 그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며 반백년기념대회 시 '교화단 불리기' 등을 추진했으나 실질적 실행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했다. 좌산상사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교화단법의 구체적인 시행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처음에는 출가교역자들도 그 중요성을 반신반의했고 쉽지 않았지만 강력한 의지로 관철했다.  경산상사 시기에 비로소 출가교화단의 외형적 틀이 정착됐다. 이렇게 오랜 시일이 소요됐다. 

지금 전산종법사는 대종사의 경륜과 〈교헌〉 정신대로 교화단을 교단운영의 새로운 틀로 제시하고 있다. 정수위단원부터 정단회를 통해 실질적으로 공부하는 교화단 운영을 모범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재가출가 모두가 공부풍토를 진작하고 그 공부의 힘으로 교화가 힘을 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명실상부한 교화단의 실행을 말씀하고 있다.

-이단치교(以團治敎)
사람을 끌어오는 것이 교화의 다가 아니다. 자신부터 교화하는 것이 공부고, 그 힘으로 법을 전하고 그 전법으로 인연마다 행복해져야 한다. 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법을 알아야 하며, 법의 실체를 알려면 신앙과 수행으로 속 깊은 공부를 해야 한다.

대종사께서 〈불법연구회 통치조단규약〉을 발간하면서 '통치'란 말을 썼다. 여기서 '치(治)'란 말은 다스린다는 뜻으로, 혹자는 정치적 의미로 이해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교화 치'를 뜻한다. 교단의 근본적인 통치는 교화로 다스리는 것이며, 교화는 마음을 다스리고 심법을 갖추는 일로부터 비롯된다.

종법사는 주법으로서 수위단회를 통해서 교단을 통치한다. 전산종법사는 "앞으로는 대중시대라 종법사 단독으로 교단을 끌고 가지 못하며, 대중의 힘과 기운으로 간다. 대중의 실체가 곧 교화단이다"며 대중의 의사를 수위단회가 적극적으로 수렴해갈 것을 주문했다. 〈교헌〉에 의하면 수위단회는 정수위단과 봉도수위단과 호법수위단의 결합체로 교단의 최고 최종 의사결정을 한다. 또한 정수위단은 최상위 교화단으로 공부로서 주법과 하나가 되고 교화단을 통해서 시방세계를 대표한다. 

교단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제생의세 구현에 있다. 교화단은 교단의 핵심 조직이며, 공부하는 교화단이라야 살아있는 조직이고, 그 생생한 교화단 망을 가지고 교단을 운전해가는 것이 이단치교다. 정수위단은 여기에 최상위 교화단 역할을 수행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정수위단부터 출가교화단으로 공부중심 교화로 내실화 한 뒤 그 취지와 정신이 재가교화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출가교화단과 재가교화단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질문이 많은데, 재가는 출가처럼 조직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교화단의 다양한 운영방안 등 장기적으로 깊이 연구해야 할 과제다.

〈본회 통치조단 총론 원문〉
본회의 창립한 시일이 천단(淺短)한이 만치 아즉 각자의 공부를 완성하야 타인을 교양할 자격자가 없고 더욱이 회원은 원근각처에 산주(散住)하야 잇슴으로 종사주 단독하신 힘으로서난 그 각지에 산주한 회원의 공부와 사업을 고로 훈련하기 어렵난지라 고로 이에 회원 구인(九人)으로 일단(一團)을 삼고 단장 일인(一人)을 가하여 단장은 종사주의게서 배운 그대로 자기 아래 구인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감독케 하고 그 아래 구인은 또 자기 단장의게서 배운 그대로 매인하(每人下) 구인식(九人式) 지도 감독키 위하야 이 단을 조직하려함에 좌와 여한 제반법칙을 제정하엿나니라.

-정수위단회(정단회) 운영, 상시훈련의 선순환 기대
그동안 정수위단원들은 두 번의 정단회를 가졌다. 아직 평가는 시기상조지만 3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활기차고 유익한 단회였다. 단원들이 교구장과 기관장으로 구성돼 있어 전국의 민심을 살필 수 있고, 교화 현장을 체감할 수 있어 교단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니까 하나 되는 느낌이 강하다.

전산종법사도 이렇게 편하면서도 속 깊은 대화의 장은 처음이라 했다. 항단이나 각단처럼 똑같이 공부담과 일기를 발표한다. 끝나면 평가가 아니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자연스레 분위기가 화기롭고 하나 되는 느낌을 준다. 하나가 되는 게 단이다. 또 하나가 되는 게 공부의 핵심이다. 진리로 하나 되고 대의로 하나 되고 단회가 속 깊은 마음공부 장이 되니 교화단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공부가 정단회부터 전 출가단회에 확산되면 교단의 정진과 화합의 분위기가 크게 쇄신될 것으로 본다. 자연스레 재가에게도 확산되지 않을까.

〈정전〉에 바탕해 스스로 일상에서 정진하고 교화단에서 문답·감정·해오하고 다시 상시에서 정진하고 다시 교화단에 모이는 훈련의 선순환이 곧 교화단이고, 우리 훈련법의 큰 특징이다. 그 안에 공부도 있고, 교화도 있고, 화합도 있고, 교세의 확장도 있다.

전산종법사의 경륜은 교화단으로 재가출가가 다 함께 정진하고 정진해서 행복하고 교화가 활력을 찾는 것이다. 교화단이 공부하는 조직으로 가려면 공부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한다. 공부는 언제 하는가? 정진은 상시에 일상에서 하는 것이며, 그 주체는 조직이 아닌 바로 개인이다. 자신이 일상에서 정진해서 얻은 소득 유무를 가지고 교화단에 가서 문답 감정하는 것이 교화단의 본질이다. 정단회도 그렇게 운영된다. 교화단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 상시응용주의사항과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이 핵심이다. 

-교화단에 대한 기대
재가출가 전 교도의 공부가 깊어져야 진실된 소통이 이뤄지고 소통이 이뤄져야 화합교단이 된다. 교화단은 신심·공심·공부심·자비심으로 하의상달, 상의하달, 좌우통달, 융통자재하는 인드라망과 같은 조직이다. 

교화단을 통해서 법이 건네고 인정이 건넸으면 한다. 교화단에서 속깊은 마음공부담이 오가고 문답감정의 장이 펼쳐질 때 도인이 많이 나오고 주세회상의 위신이 세상에 드러난다. 아무리 불사를 많이 하고 사회적 명망이 높아져도 공부가 없으면 결국은 공허한 교단이 된다. 

[2019년 2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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