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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주역으로 만나다 54. 성리품 4-지선과 극락
대종경, 주역으로 만나다 54. 성리품 4-지선과 극락
  • 임병학 교수
  • 승인 2019.01.30
  • 호수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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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학 교수
임병학 교수

[성리품 3장에서는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선과 악을 초월한 자리를 지선이라 이르고, 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를 극락이라 이르나니라'"고 해, 지선과 극락을 말씀하고 있다. 

먼저 지선은 〈대학〉에서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사람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선에 그치는 데 있다(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고 해,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여 새롭게 태어나 살아가는 유학의 궁극적 세계임을 밝히고 있다. 

〈주역〉에서는 "음양이 합덕하여 강유의 본체가 있는 것이다. 천지의 본성을 체득하며, 신명의 덕에 감통하니"라고 해, 선과 악을 초월하여 음양이 하나가 된 신명(神明)의 세계를 '천지지선(天地之撰)'이라 했다. 또 천지의 선(撰)과 신명의 덕을 합해서 '선덕(撰德)'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찬(撰)은 지을 찬, 품을 찬 등으로 이해하지만, 〈주역〉에서는 선악을 넘어선 선(善)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를 보면 수(手)와 손(巽)으로, 손괘(巽卦, 神道 = 風道)를 손으로 진리를 헤아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괘를 상징하는 풍(風)은 성리품 1장의 '청풍월상시'의 풍과 연결된다.

극락은 변의품에서 "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그쳐 있으면 그 자리가 곧 극락이요, 죄복과 고락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자리가 곧 지옥이니라"라고 해,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어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지선과 극락은 유학과 불교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지선과 극락을 조합하면 '지극(지극하다)'과 '락선(선을 즐기다)'이 되어, 지극한 인간 본성의 세계를 즐긴다는 의미가 된다. 

대종사는 지선과 극락을 통해 유학과 불교를 온전히 융합하고 있다. 원불교는 석가모니를 연원으로 불법을 주체삼아, 동북아 근원사상인 〈주역〉의 이치를 융합한 실천불교인데, 〈원불교 교사〉와 〈소태산 평전〉(이혜화, 2018)의 대종사의 구도와 대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발심주문인 '우주신 … 시방신 …'과 '일타동공 일타래 …… 십타동공 십타래'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수리(數理)로 〈주역〉의 진리와 만나게 된다. 둘째는 기도의 대상인 천지신명은 〈주역〉의 천지지도와 신명지덕의 도덕으로 풀어지고, '부처님의 도덕'이 되어, 이후에 법신불로 변화한 것이다. 셋째는 대각 직후 해석된 〈동경대전〉의 태극과 〈주역〉의 한 구절은 역학의 핵심적 원리라는 것이다. 넷째는 9인 선진과 법인기도에서 〈주역〉의 팔괘도(일명 일원팔괘도)를 단기로 사용한 것이다. 다섯째는 지선과 극락, 인과와 음양, 선천과 후천 등 불법과 역도를 하나로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선의 선악은 순(順)이라면, 극락의 고락은 역(逆)의 입장으로 유학과 불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즉, 불교는 현실의 고해에서 극락으로 나아가고, 유학은 하늘의 품성인 선으로 악을 넘어간다는 것이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9년 2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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