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번쩍 눈이 떠진다. 또 새벽 4시50분, 이건 '직업병'이다. 언제 어디서든 이 시간엔 무조건 깬다. 알람을 맞춰두지만 실은 필요 없다. 아무리 더 자고 싶어도, 심지어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꼭 눈이 떠지는 마의 시간, 4시50분' 새삼 '세월의 무게'가 참 무섭다. 이 시간에 눈 뜬 것이 벌써 20년이다. 

단지 세월의 무게만으로도, 인간은 변할 수 있다. 내가 산증인이다. 사실 나는 참 잠이 많다. 특히 저혈압이라 아침엔 컨디션도 최악이다. 오죽 고등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가 심각하게 말했다. "넌 왜 아침만 되면 짜증스러워져?" 그런 적 없다고 변명을 붙였지만, 사실이었다. 그토록 아침이 버거웠던 내가, 이제 새벽에 눈 뜨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으니, 세월의 무게다.

게다가 놀랍게도 난 새벽좌선시간에 졸지 않는다. 혹 누군가 좌선시간에 내 조는 모습을 목격하고 비웃을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졸지 않아온 세월이 15년은 넘었다. 깊이 각성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기에 그 날의 기억이 뼈에 사무쳐, 새벽에 졸 수 없었다. 졸지 않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왔다. 

바야흐로 22살의 어느 좌선시간, 잠이 나인지 내가 잠인지 모를 허송시간을 보내다 벼락같은 큰 소리가 나를 깨웠다. "이혜성 눈 떠" 지도교무님이 내지른 소리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럽고 화도 났다. '도반들도 다 듣고 있는데, 큰소리로 내 이름을'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상한 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뛰쳐나가봐야, 그곳은 총부 아닌가. 갈 곳이 없던 나는 터덜터덜 성탑으로 걸어간다. 온통 요란한 마음이다. '새벽에 졸린 것이 당연하지, 내가 아침에 얼마나 저혈압인데 당연하지, 게다가 사람이 졸수도 있지' 졸던 나를 한참이나 다독이며, 합리화하다 성탑 앞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했다. 

"이혜성 눈 떠" 그 순간보다 10배는 더 부끄러웠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교도가 성탑 앞에서 하염없이 절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정성스레 절을 하던지, 그 곳의 공기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공부하는 내가, 교도님들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사주신 밥도 늘 얻어먹은 내가, 서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는 내가, 열심히 졸고 있던 이 시간에 재가교도님은 기도를 하고 있구나" 화면이 분할되듯, '졸고 있는 나'와 '절을 하는 교도님'이 교차되어 내 머리를 강타한다. 

'내 새벽을 늘 이렇게 버릴 수는 없다'하는 놀라운 자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잘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는 이제 나를 졸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거다. 대산종사는 "정진 적공이란 하루 세 끼 밥 먹듯 오늘도 내일도, 이달도 내달도, 금년도 내년도 한결 같이 공을 들이는 것이라" 법문했다. 

〈대산종사법어〉 교훈편 53장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같은 정성이면 된다. 그런 지속성이면 된다. 세월의 무게는 결국, 나를 이기기 때문이다. 어떤 날엔 얼마나 더 울어야 진리에 가까워질지, 한없이 내가 부족 해 보이는 그 날엔 더 이상 졸지 않게 된 나를 기억하며 '세월의 무게'에 희망을 가져야겠다.

/교학대서원관

[2019년 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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