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우며 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 가르쳐주신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은 각자의 근기와 경우에 따라 각각 그에 맞는 법으로 마음 기틀을 계발하는 공부입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으로 공부하고 일일이 문답하고 지도인에게 감정과 해오를 얻으며, 내 삶을 산 경전과 큰 경전으로 삼는 공부이기에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공부는 맞춤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공부인: 얼마 전에 제가 '세계 평화'를 얘기하며 눈물까지 흘렸어요. 진짜 알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자식들을 키우면서 제 마음에 포탄과 욕이 막 난무해요. 세계 대전을 치르는 기분이에요. 큰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병이 날 것 같아요. 순한듯하면서도 어느 때는 고분고분하지 않아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큰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가정과 자기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때는 현실을 외면하고 출세간적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커서.
▶지도인: ○○ 공부인이 아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마음으로 공부하면 아들의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이 에너지로 보일 거예요. 

▷공부인: 에너지로 보이기만 하면 뭐해요. 점수가 나오지 않는데!
▶지도인: ○○ 공부인의 엄마로서의 점수는 몇 점인지 생각해보세요. 

▷공부인: 하하!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지도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들 이름을 라훌라라고 지었습니다. '장애', '속박'이라는 뜻이죠. 성철스님은 외동딸에게 '불필(不必)'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부모 자식 사이의 인연은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애증의 인연으로 공부하는 거죠.

▷공부인: 그 분들은 자식을 직접 키우시지 않았잖아요. 
▶지도인: ○○ 공부인도 큰 아들을 기숙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공부인: 하하하
▶지도인: 자식과의 만남은 그 어떤 종신수도원과 봉쇄수녀원에서 올리는 기도보다도 면벽수행보다도 에너지를 올인하게 만드는 공부죠. 큰 아들을 통해서 나오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부모 마음공부이고, 부모 마음을 넓히는 것이 부처 마음입니다. 자식에게는 내 속마음을 속일 수 없습니다. 적당히 안 그런 척 할 수 없습니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정말 많지만 결국 자식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공부를 하게 됩니다.

▷공부인: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는 가지려고 무지 애썼고, 아이가 생겼을 때는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랐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 마음이 변하네요. 
▶지도인: 부모의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 작용이죠. 아들을 혼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그 경계에 끌리는지 안 끌리는지 대중만 잡는 공부를 하면 능히 혼내기도 하고 능히 농담도 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질 겁니다. 경계를 대해서 '공부'를 붙이면 대중만 잡는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공부인: 속상할 때는 속상한 마음 '공부', 화날 때는 화나는 마음 '공부' 이렇게요? '공부'를 붙이니 세상살이와 인생 자체가 공부라는 것을 알겠네요. 
▶지도인: 경계가 올 때마다 전생의 업장에 짝짓고, 미래에 어떻게 하겠다고 다짐하며 스스로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 지니라"(무시선법)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계에서, 지금 여기서 공부할 때라고 하신 은혜가 큽니다. 삼세의 업장을 녹여주신 겁니다. 우리는 다만 여기서 '그' 경계로 '그' 마음으로 공부만 하면 되니까요. '마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으며, 주판을 든 점원도 선을 할 수 있'듯이 ○○ 공부인은 지금 자식을 키우며 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대범, 선(禪)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무시선법)라고 하셨습니다. 선을 많이많이 해서 마음의 자유를 얻겠다고 다짐하는 무거운 수행에서 벗어나 지금 이 경계에서 바로 마음의 자유를 얻는 선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공부인: 제 뜻대로 행동해주지 않는 아들이 갑자기 고맙네요. 제 분별성과 주착심을 발견해서 집착한 만큼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해준다는 것을 알겠어요. 물론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괴로운 마음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교화훈련부

[2019년 2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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