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최정윤 교무] 세상 모든 문명의 발달은 편리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작용이며, 사회의 모든 제도 또한 그 사회를 잘 이끌어 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의 작용이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시도 '이 마음'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지금 여기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내 삶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어진다. 어떤 사람은 0.01%의 가능성만 있어도 그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정 반대의 사람도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정산종사는 무본편 2장에서 "마음의 본말을 알고, 마음 닦는 법을 알고, 마음 쓰는 법을 잘 아는 것이 모든 지혜 중에 제일 근본 되는 지혜가 된다"고 말씀했다. 일반적으로 지혜의 사전적 의미가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이라면, 지식은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혜와 지식은 약간의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정산종사는 이 지식과 지혜 축적을 포괄하는 입장에서 "지식 연마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혜광명을 추구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인과의 진리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 직관하는 세계인데 직관도 근본적으로 지식이라는 바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한울안 한 이치에〉 제3장 일원의 진리 66항)고 강조하면서 지혜와 지식에 대한 서로 바탕 되는 관점을 밝히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사리연구를 통해 천만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데 걸림 없이 아는 지혜의 힘이 생기도록 마음을 밝히고 또 밝히는 것은 물론, 밝힌 그것을 적극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이처럼 마음을 잘 쓰기 위해서는 지혜와 지식을 단련할 수 있도록 일과 이치에 대한 연구가 생활화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는 "개인·가정과 사회·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전쟁도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다 이 사람들의 마음 난리로 인하여 발단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음 난리는 모든 난리의 근원인 동시에 제일 큰 난리가 되는 것이니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대종경〉 수행품 58장) 고 당부했다. 비록 바쁜 일상이지만 마음을 어떻게 잘 써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을 잠시잠깐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정산종사는 사람이 삼세의 일체사를 알려면 법계의 모든 일이 마음으로 된 줄 알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편리한 물질문명은 일상생활에 보조물 밖에 되지 않는 것이요, 끝까지 놓을 래야 놓을 수 없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내 마음에 삼대력을 쌓고 또 쌓아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공부인이 되어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자 성현들은 바로 이 마음 사용법을 깨달아 자기 자신의 마음에 공들임으로써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도록 마음을 잘 써서 행복한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를 희망한다.

/원광보건대학

[2019년 3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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