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감이나 불안함도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 작용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구전심수(口傳心授)란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전심수의 정법 아래 사람사람이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도록 하기 위해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을 내놓으셨고 이를 훈련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인 〈정전〉을 생활 속에서 응용한 후 지도인에게 일일이 문답할 때 법맥(法脈) 신맥(信脈) 법선(法線)을 올바로 연할 수 있습니다. 

▷공부인: 방학이 되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고립감이에요. 학기 중에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집에 혼자 있으니까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아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요. 고립감과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해대요. 정신과에 가서 얘기하면 분명히 저에게 불안장애라고 진단 내렸을 겁니다.
▶지도인: 고립감이나 불안함도 나를 통해 나온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 작용입니다. 원래는 고립되었다, 고립되지 않았다 분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고립감을 느끼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공부인: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마음들이 나올 이유도 없는데 자꾸 불안해요. 
▶지도인: 경계를 따라 나오는 마음은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진리의 작용입니다. 왜 이런 마음이 나올까?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겠죠. 불안한 마음이 나올 때 외면하고 피하면 그 불안함이 더욱 커지는 것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공부인: 그럼 외롭고 불안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인가요?
▶지도인: 전화를 하고, 하지 않고가 중요하기보다는 나의 불안을 진리의 작용으로 신앙하느냐 못하느냐를 잘 살펴야 합니다. 자신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전화를 해도, 하지 않아도 다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진리의 작용으로 신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도 도피이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지곤 합니다.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이 나올 때마다 그 마음들을 외면하기보다는 일원상의 진리로 인정하고 안아주는 공부만 하면 됩니다. 불안한 마음이나 외로운 마음이 나오면 안 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마음 작용을 간섭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에 나오는구나,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마음들이 나에게 머물 만큼 머물다 어느 순간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은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깨침이 더딤을 걱정하라'고 하셨고, 소태산 대종사께서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닌 내가 그 마음을 괴롭히고 살았구나'하고 웃으며 내 마음 작용과 친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인이 항상 우울한 사람, 항상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 어느 때는 우울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불안하기도 한 것뿐이죠. 

▷공부인: 그러고 보니 불안하다 어쩌다 했지만, 텔레비전에서 제가 좋아하는 배구 경기를 중계하면 아무런 분별없이 봤네요.
▶지도인: 정확하게 자신의 마음 작용을 잘 보셨네요. 세상은 자꾸 외로움, 고독, 불안을 부정하고 벗어나라고 합니다. 종교도, 언론도, 수련 단체도, 책에서도 모두가 불행을 부정하고 행복만을 추구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이 일어나면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마음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숨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경계를 따라 행복할 때도 있고, 경계를 따라 불행할 때도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삶의 양면입니다. 원래는 행복하다, 불행하다는 분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나니, 그 행복과 불행을 다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인: 행복만 추구하는 것은 사실에 맞지 않는군요.
▶지도인: 심리학적으로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음과 양, 행복과 불행, 양면성을 다 받아들일 때 삶을 원만하게 바라보고 살 수 있습니다. 항상 맑으면 사막이겠죠.

/교화훈련부

[2019년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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