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깨달음, 인류문명의 역사적 경험은
마음에서 평화가 비롯된다는 사실 일깨워

[원불교신문=김태우 교도]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전쟁은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생각되어져 왔다. 이러한 생각은 진화론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들은 루소의 '고결한 야만인' 대신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입장을 견지했다. 

〈문명과 전쟁〉의 저자이자 텔아비브대학의 아자 가트 석좌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사람속이 진화한 200만년 중 99.5%를 차지하는 수렵채집사회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치열한 싸움의 과정을 통해 폭력성이 인간의 본성에 내재화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과학적·사회적 논쟁은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해 비교적 최근까지도 지속되어 왔지만,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의 폭넓은 연구 덕분에 폭력은 동물적 본성이 아닌 문명에 기인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유네스코도 1989년 총회에서 이러한 논쟁을 해소하기 위해 전쟁을 문화적 산물로 바라보는 '폭력에 대한 세비야 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전쟁의 본질이 인간의 본성이건 문화의 산물이건 간에 인류 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전쟁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며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한 부와 권력의 축적·집중·제도화는 그에 따른 사회체제의 변화·계층·구조화에 영향을 줬고, 그 과정 속에서 전쟁은 부와 권력을 얻는 수단이자 사회체제의 유지와 번영을 위한 수단이었다.

전쟁이 개인의 부와 권력 그리고 집단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인류가 전쟁을 통해서 얻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명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첫째는 도'라 했다. 여기에서 도란 온 국민의 마음을 일치시켜 범국민적인 동의를 이끌어 낸다는 의미이다. 시대마다 집단마다 전쟁의 명분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명분들의 공통분모를 찾다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고 말한 바와 같이 명분은 평화로 귀결된다. 다만 세계인권선언문 공표 이전의 인류 역사에서는 평화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집단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인류는 전쟁을 통해 평화의 길을 걸어왔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오늘날 인류 문명의 시대정신은 인류의 행복과 공동번영을 목적으로 한 '세계평화'이다. 이처럼 평화의 범주가 세계로 확장된 데에는 냉전 시대의 종식 이후 급격하게 확산된 세계화의 영향이 크다. 인류의 삶은 이제 국경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지구적인 상호연관 하에 하나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인류 문명 또한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의 공존과 공생을 모색해야 하는 다문화 시대를 맞이했다.

세계화 시대에서의 평화로 가는 길은 전쟁이 아닌 공존과 공생이 핵심이다. 과거에는 자기 집단의 평화를 위해 전쟁이 합리적인 수단이었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전쟁보다 외교를 통해 그리고 국제적 협력과 공조를 통해 평화를 얻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대변화의 기저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의 영향이 실로 컸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와 전쟁 속에서 보여준 인간의 잔혹함은 더 이상 전쟁이 평화의 길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동서고금의 성인의 깨달음과 현인의 지혜 그리고 인류문명의 역사적 경험은 마음에서 평화가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인류는 아직 평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지라 평화로 가는 길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들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어느 시대보다 인류가 마음과 평화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바야흐로 마음의 시대이다. 평화로 가는 길이 곧 마음공부가 아닐까.

/원광대 국제교류과 초빙교수

[2019년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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