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오진탁 교수가 우리에게 전하는 화두, 
'삶과 죽음은 하나.' 그는 오랜 시간, 공들여, '삶과 죽음'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그와의 만남을 마음으로 저만치 앞서 기다려왔다. 내게도 문득 '삶과 죽음'이 가슴으로 닿아온 날 이후부터다.

왜 생사관 확립이 시급한가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때문에 죽음을 절망, 두려움, 불행과 같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은 맥락으로 그는 말문을 열었다. 

"육체 중심의 죽음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죽음이해는 성숙할 수 없고, 죽음의 질뿐 아니라 삶의 질 역시 향상될 수 없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자기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삶을 영위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됨을 그는 이야기 했다. 

그는 먼저 우리 사회 죽음이해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왜 생사학 정립이 필요한지, 왜 죽음이해가 중요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죽음문제를 과학적 세계관과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의료현장에서도 인간의 치료는 육체 기능의 유지와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에서도 과학적 사고가 교육의 핵심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죽음 현상은 자연히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임종순간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도록 인도하는 게 아니라, 심장이나 호흡, 뇌 기능이 언제 멈추는지, 즉 육체의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가운 병실에서 의료 기계들에 둘러싸인 채 의료진이 죽음을 선언하는 냉랭한 방식. 이와 같이 가족과 격리된 의료기관에서의 임종모습이 우리 사회 전체의 죽음 이해를 결정짓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의학에 의한 심폐사와 뇌사 같은 육체적 죽음 판정 기준 이외에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죽음이해를, 우리 사회는 가르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육체만의 존재이고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이해, 죽음이해, 지나칠 정도로 세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평소 죽음을 충분히 준비하며 

임종 순간 가족과 편안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여유있게 떠나는 것,
이런 죽음이 바로 아름다운 마무리"

죽음이해는 곧 삶의 이해
"죽음이해는 곧 삶의 이해이고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죽음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은 그 사회 삶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달라이라마도 '죽음은 육신이란 낡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죽음은 육신의 죽음일 뿐이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하고 있다." 

1997년 한림대에 죽음 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2004년 생사학연구소를 개소한 그. '생사학' 분야를 국내 대학에 최초로 도입한 그는, 20여 년 동안 죽음에 대한 통찰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이해였고, 삶에 대한 깊고 깊은 사유였다. 

"우리 사회 죽음의 질은 최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임종 직전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도 부족하다"는 그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단언한다. '생명교육'을 그는 이 대목에서 강조한다.  

"생명교육은 죽음 준비교육이고 또 삶의 준비교육이다. 미국이나 독일에서는 학교와 사회 교육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시아 죽음의 질 1위, 대만도 고등학생 때 한 학기 동안 매주 2시간씩 생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 '행복한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생명교육을 학교와 사회 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 생명교육을 통해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그의 말에 힘이 실린다.

웰다잉법·존엄사법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법'은 2016년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언론에서 '웰다잉법', '존엄사법'으로 이름하고 있지만,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고 웰다잉일 수는 없다. WHO 규정대로 죽음을 신체적, 사회심리적, 영적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웰다잉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웰다잉을 위해 평소 준비해야할 3가지를 그가 전했다.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죽음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사전 의료의향서', '사전 장례의향서'를 미리 준비하고, 유서를 작성해 매년 연말연시에 읽어보고 수정한다', '평소 죽음을 주제로 당사자와 가족 간 대화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죽음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자기가 원하는 임종방식을 가족에게 제시하고, 동의를 미리 받아 두는 게 좋다', '죽음이 자신에게 임박했을 때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의 어조는 차분했고, 눈빛은 깊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
"좋은 죽음이란 죽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평소 죽음을 준비하고 마지막 순간 가족과 편안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나는 것이다." 그는 '좋은 죽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세계에서 가장 죽음의 질이 좋은 나라 영국에서는 '가족과 친구가 함께 있는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을 좋은 죽음이라 생각한다. 연명의료만 중단한다고 좋은 죽음을 맞을 수는 없다. 죽음을 공부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존엄사에 이를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존엄사란 '준비하고 맞이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행복한 죽음은 행복한 삶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방점을 찍는 그. 그가 다시 우리에게 공들여 묻고 있다. "좋은 죽음의 관점에서 우리의 죽음은 어떠한가."

[2019년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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