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교당 지역주민 대상 선방 운영
영성의 시대, 원불교 선의 세계로 안내해야

[원불교신문=이성하 교무] 얼마전 교당 입구와 벽면에 'Won Buddhism Meditation Temple'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사실 원부디즘과 템플이면 될 것을 굳이 'meditation'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명상이라는 것이 현재 교당에서 주요한 활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 교당들이 현지인 교도를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바로 이 선방 운영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관계없이 명상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글인데  2005~2012년 까지는 미국 인구의 8% 정도가 명상 경험이 있었으나 그 후 5년이 지난 2017년 무렵에 미국 인구의 18% 즉 6천만 정도가 명상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오프라 윈프리, 마돈나, 휴잭맨 같은 헐리웃의 대스타들이 명상을 하며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IT산업의 CEO들도 명상을 하고 구글 같은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명상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첨예한 생존 경쟁과 물질적 풍요를 좇아 살아온 그들이 왜 명상으로 머리를 돌리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이란 결코 만족이 없고, 이 욕망을 채우려 너도 나도 달려가지만 거기서 만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대신 불안과 괴로움이다. 자본주의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선 그들도 자신들이 추구한 물질적 가치 속에서 삶의 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삶의 대안을 묻고 찾았던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2011년 부터 명상을 시작한 일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고, 자기 힘의 근원이라고 말하며 세계의 모든 명상 스승들과 자기 계발, 마음공부의 대가들을 불러 인터뷰를 하고 인생의 문제를 질문하고 답을 듣는, 'super soul conversation' 이라는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본을 앞세우는 미국에서 조차도 물질에서 삶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각과 욕구를 조절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명상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사회는 어떨 것 같은가? 지금 보다 단순해지고 안정된 사회가 도래 할 것 같은가? 아니라면, 무엇이 끝없는 욕망과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현실로 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하여 평정을 찾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구원은 없다. 미국의 대부분 교당들은 선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당마다 선방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반드시 누군가를 교도를 만들겠다는 것보다 불확실의 시대를 살며 만연한 경쟁, 불안과 갈등 속에 가슴과 머리가 들끓는 사람들을 원불교 선의 세계로 우선 안내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 사회에서 당면한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고 현지에서의 교화 방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한국의 스트레스 지수야 말로 OECD 국가중에서 항상 1, 2위를 차지 하는 수준 아닌가. 머리가 뜨겁고 가슴이 불타는 한국 사회에 누가, 무엇으로, 그 머리를 식혀주고 가슴의 불을 꺼줄 것인가? 

우리가 수승화강 식망현진의 선법으로 그 불을 꺼주자. 일선의 교당들이 새로운 교화의 방법을 모색하고 교화 확장을 시도하는 중에 그 돌파구를 선, 명상에서 찾아 보면 어떨까 싶다. 
미국 현지 교당들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선방을 운영하듯, 우리 교리를 전달하고 원불교를 소개하기 전에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와 변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우리 교당들이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교무님들은 오랫동안 명상을 해온 명상의 전문가들이다. 교당마다 작은 요가 선방이 열려서 동네 선방의 방장이 되어도 좋겠다. 모든 것이 극하면 변한다고 세상이 물질의 끝을 달리다 보니 이제 저 먼 발치서 영성의 시대가 느릿하게 오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작으로 세상에 명상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함께 가고 이 바람을 우리가 키워가야 한다.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 그대로 머물러 이 고통을 달게 받도록 할 것인가? 우리 곳곳에서 좌복을 넓게 펼 일이다. 

/샌프란시스코교당

[2019년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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