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제7 성리품' 7장에서는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도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 만일 견성만 하고 성불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아니 한다면 이는 보기 좋은 납도끼와 같아서 별 소용이 없나니라'"이라 해, 견성과 성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아는 견성과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는 성불을 통해 원만한 부처가 되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견성과 성불을 <주역>으로 만나고자 한다.

중천건괘(重天乾卦)에서는 "군자가 덕을 이룸으로써 행을 하나니, 날마다 옳게 보아서 행하는 것이다(군자 이성덕위행 일가견지 행야, 君子 以成德爲行 日可見之 行也)"라고 해, 수도자인 군자가 본성인 덕을 이루는 것은 실천하기 위한 것이며, 매일의 경계에서 견성하여 행하는 것이라 했다.

또 중천건괘에서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덕에 나아가서 일을 닦는 것이니, 충과 믿음은 덕에 나아가는 까닭이고, 말씀을 닦아서 정성을 세우는 것은 일에 거처하는 것이다.

이를 것을 알아서 이르는 것이라 기미와 함께 할 수 있으며, 마침을 알아서 마치는 것이라 더불어 의를 보존할 수 있느니, 이러한 까닭으로 윗자리에 있지만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지만 근심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강건하여 그 때에 따라서 근심하는 것이니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는 것이다"라고 해, 견성성불을 진덕수업(進德修業)으로 논하고 있다. 

즉, 덕에 나아가는 진덕(進德)은 견성과 짝하고, 사업을 닦는 수업(修業)은 성불과 짝이 된다. <주역>의 입장에서 견성을 위해서는 중심(中心)과 믿음이 있어야 하고, 성불을 위해서는 성인이 밝힌 진리의 말씀을 익히고, 자신의 정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또 견성에서는 기미(幾微)를 아는 것과 정의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고, 성불에서는 자신의 자리에 맞는 행동으로, 윗자리에서는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서는 근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계사상(繫辭上)에서는 '무릇 <주역>은 성인이 덕을 숭상하고 일을 넓힌 것이니(부역 성인 소이숭덕이광업야, 夫易 聖人 所以崇德而廣業也)'라고 하여, 성인은 숭덕광업(崇德廣業)한 것이라 했다. 성인의 견성은 덕을 높이는 것이고, 성불은 사업을 넓게 하는 것으로, 군자의 진덕수업과는 다른 입장임을 알 수 있다. 

성리품 6장에서는 마음의 형체와 성품의 체를 논하면서 불성으로 맺고, 7장에서는 성품의 본래 자리와 심신의 사용함을 밝혀 마음으로 맺고 있다. 6장이 현상에서 근원 자리로 돌아가는 방향이라면, 7장은 근원 자리에서 현상으로 사용하는 방향이다.

또 본래 자리를 아는 것과 심신을 사용하는 것을 나누면, 지행의 논의로 이해할 수도 있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9년 3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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