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불공법은 현대에 들어와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이것이 탄생한 것은 유래가 없는 인간의 고통이 극에 달한 20세기다.

사회학자 베버는 일찍이 근대문명 하에서 인간은 삶의 의미와 자유를 상실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성이 도구화됨에 따라 조직과 형식 속에서 인간은 자율성을 잃고 파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연의 신비가 깨지고 욕망이 극대화되고 있으며, 증오를 먹는 전쟁과 같은 대량살상으로 인류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동일성의 욕망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합리성·효율성을 앞세워 인간과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고자 수량화·계량화했다. 예를 들면,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일구며 살아가는 인간의 '살아 있는' 실체적 속성을 통제 가능한 단일하고도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힘 있는 자가 하나의 동일한 형식을 주장하고 강제하게 되면, 나(혹은 우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는 배제되고 폭력대상이 된다.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고 말살한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은 물론 일상의 집단관계 또한 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본화된 인간의 노동은 사고파는 상품과 같으며, 인간은 교환 가능한 기계부품처럼 취급된다.

과연 도구적 이성의 문명시스템은 인류의 피눈물로 쌓아올린 정의,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을까. 해결을 위해서는 일단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존재 하나하나는 법신불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법신불을 모태로 한 만물은 각자의 존재 의미가 있으며, 그 자체로서 완성된 부처다. 이때의 부처는 진공묘유의 진리적 세계가 투영된 절대적 실존을 말한다.

존재만으로도 유일무이한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하듯이, 내가 정면으로 대하는 타자의 얼굴은 신의 계시를 담고 있다. 인류 모두는 법신불의 자손이다. 각자는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법신불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신불은 현상 속에서는 결코 단일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존재도 닮은 것은 없다. 따라서 모든 존재의 권능 또한 획일화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는 아이의 권능, 어른은 어른의 권능, 식물은 식물의 권능, 동물은 동물의 권능처럼 모든 존재는 독자적 차원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 권능을 우리가 어떻게 접하고 이해할 것인가가 불공의 핵심이다. 물과 불에 대한 불공은 물과 불의 성격인 각각의 권능을 파악해 순기능화 하는 것이다. 이처럼 불공의 첫걸음은 대상의 고유한 존재 양태를 파악하고 활용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불공은 일마다의 성격을 따라 나타난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적이며 선하고 곧은 의지와 함께 조화롭고 상생하는 기운을 타고나며,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지향한다. 그것을 부여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인 절대은(絶對恩)이다. 불공은 절대은을 향한 것이다.

만물은 무한한 세계를 감싸며 무한한 자비로써 길러주는 법신불의 화현이며, 현실에서는 내가 기꺼이 환대하고 받들어야 할 대상이다. 현대문명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이처럼 모든 존재는 하나의 세계인 법신불로 소급되며, 따라서 상대화될 수 없는 절대적 부처의 권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광대학교

[2019년 3월15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