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교구 대구교당 김상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대구교당 상타원 김상원(常陀圓 金常圓·69) 교도를 인터뷰하기까지에는 몇 차례 어려움이 있었다. 본인은 아직 자격이 되지 못한다며 다른 사람을 차례로 추천하면서 무산될 뻔 한 것을 주변 인연들이 설득했다. 

대구교당을 들어서니 몇몇 교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며 말을 꺼낸다. "상타원님이 하시는 일은 무조건 믿고 따릅니다. 콩을 팥이라 해도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말이 필요 없이 앞장서서 제일 힘든 일을 골라서 먼저 하고, 일을 끝내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도반들에게는 상타원님이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신창원교당에서 시작된 봉공활동이 대구로 이사 오면서 그대로 이어져 대구교당 봉공활동 20년 등 그의 종교생활 30년은 오롯이 봉공활동 30년이다. 대구교당 봉공회장 6년을 마무리하고 올해 초 자리를 물려준 것도 안압조절이 되지 않는 그의 건강을 염려해 도반들이 강권하면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무조건 교당에 옵니다. 교당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늘 할일이 있고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일주일 내내 교당에 있다고 교무님이 저를 칠타원이라며 놀리셨답니다."

내향적인 성격의 그를 자신의 울에서 벗어나 교당, 교구, 회상으로 폭을 넓혀준 것도 봉공활동이다. 봉공회장을 맡아 여성회, 봉공회로 나눠져 있던 교당 분위기를 서로 화합하며 한 방향으로 합력하도록 바꿔놨다.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에도 눈을 돌려 주민센터와 연계한 독거노인 반찬봉사 활동도 벌써 6년이 넘었다. 봉공회 외연이 넓어지면서 기금 마련 활동도 덩달아 커졌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돈가스를 만들어 판매했다. 돼지고기 120㎏을 사서 치즈돈가스 400팩을 만들어 판매하려면 20~30명이 며칠 동안 함께 움직여야 했다. 

"모든 회원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이니 일이 다 잘되는 거지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다 되더라구요. 사은님이 늘 곁에 계시니까요."

'임께서 내마음 모르신들 어떠하며 동지들 내사정 안돌본들 어떠하리…대장부가 공도사업 하여갈제 세상이 알고모름 그 무슨 상관이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가 '안심곡'이다. 

"힘들 때는 하늘을 먼저 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허공 한 번 보고 성가 부르고 나면 저절로 안정이 됩니다. 어떤 일도 남이 대신 해줄 수는 없고 결국 혼자 가는 길이니까요."

신창원·대구교당 봉공활동 30년
교법 그대로 녹아든 무상보시의 삶

30여 년 봉공활동을 해오면서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도, 더 잘하겠다는 과욕도 없이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온 삶이다. 큰 행사로 정신없이 바쁠 때도 먼저 와서 다듬어놓고 남들이 다 돌아간 뒤에 맨 마지막으로 문을 나섰다. 그 많은 일들을 해오면서 어떻게 늘 여여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요란할 때가 왜 없겠어요? 그때는 나를 돌아보게 되고 원인이 보이면 요란함이 바로 내려갑니다. 상대방이 주는 화는 내가 안 받으면 그만이지요. 화가 들어왔나, 아직도 남았나, 나갔나 들여다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되면 일원상 앞에 엎드렸다. 3년 전 백주년을 앞두고 남편이 폐암으로 고생할 때 기도가 많은 힘이 됐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며 기도로 극복했다. 아픈 사람 옆에 두고 그가 해줄만 한 일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나중에는 어차피 열반해야 한다면 백주년을 지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되더군요. 남편 열반 후에는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문득 문득 떠올랐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게 공부했구요."

원기67년 그가 32세 때 우연한 인연따라 신창원교당에 입교원서만 쓰고 마음까지 따라가는 데는 7년여가 더 필요했다. 당시 조영진 교무의 정성으로 교당에 완전히 정착한 은혜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에게는 '즐거운 신앙인, 보람 있는 신앙인'이 표준이다.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재미없고는 본인에게 달렸다고 봅니다. 모르고 짓는 죄가 크다는 말씀처럼 내 잘못을 내가 알면 고쳐나가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다 이 교법 만난 덕분이지요."

공부 좋아하는 그는 설법을 들을 때마다 녹음, 공책에 옮겨 적기, 도반들에게 법문 보내기가 한 셋트다. 훈련에서, 일요법회에서, 매일 새벽 원음방송에서, 유튜브 강의에서 들은 법문 중에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말씀은 공책에 옮겨 적어놓고 복습해 온 것이 벌써 20여 권이다. 그의 책상 앞에는 울긋불긋 포스트잇도 빼곡하게 붙어있다. 특히 유념할 말씀들을 적어서 매일 아침 기도가 끝난 후 혼자서 구호로 외치며 다진다. 

"몇 년 전부터 영산성지 법인기도를 다니면서 기도의 폭이 넓어졌어요. 개인기도 위주였던 신앙을 반성하며 전체기도를 하게 됐어요. 세상을 위한 기도와 함께 주변 인연 20여 명을 늘 챙기며 맨 마지막에 저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희사만행이 화두입니다."

[2019년 4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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