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 그 일을 전체와 부분과 변화로 볼 수 있어야
정의 불의 상황따라 달라, 응용하는데 온전하게 생각해야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지도인은 공부인이 자신을 일원상의 진리인 대소 유무의 이치로 원만하게 보도록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감정과 해오는 공부인이 지도인에게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얻는' 것입니다. 또한 공부인의 질문에 지도인의 진리적 해석이 더 선명해집니다. 지도인과 공부인은 마음을 공부하며 영생을 함께 걷는 도반입니다. 

▷공부인: 오늘 작업취사를 공부하면서 정의와 불의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마다 옳고 그름이 다르고,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에도 뜻이 다를 때가 많아요. 노측과 사측의 정의가 다르고, 국가 간에도 정의가 다릅니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독립투사가 테러리스트로 보이기도 하고, 테러리스트가 영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의어든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든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작업취사의 목적)가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서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죽기로써 한다면 세상은 온통 아수라장이 될 겁니다.

정산종사께서 "일심(一心)이 동하면 정의가 되고, 잡념이 동하면 불의가 된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 30장)고 말씀하셨지만, 이 말씀대로 생활 속에서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지도인: 부처께서는 불법이 이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각각 '코끼리는 이렇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불법은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노자께서도 항상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응용하는 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상시응용주의사항). 이 공부법은 무유정법(無有定法),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겁니다.

정의와 불의는 상황 따라 다릅니다. 순간순간 다른 정의와 불의를 알아차리려면 먼저 전제와 정답을 놓고, 응용하는 데 온전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정의와 불의를 나누기보다는 그때 그때 내가 마주한 상황이나 사람을 대소 유무의 이치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대소 유무의 이치로 본다는 것은 그 일과 사람을 전체와 부분과 변화의 관점으로 동시에 보는 겁니다.

한 자루의 볼펜이 있습니다. 볼펜이 길다 짧다는 분별이 없다가 볼펜보다 짧은 지우개를 옆에 대보면 묘하게 길고, 볼펜보다 긴 책을 옆에 대보면 묘하게 짧습니다. 길다 짧다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지 않으면 평생을 길다 짧다로 싸울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是非)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善惡) 더럽고 맑은 것(染淨) 등 갖가지 모든 법(諸法)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옳은 것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평생 그 사람을 좋다, 나쁘다로 판단해서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해질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거슬리는 한 가지 면은 그 일이나 그 사람의 부분인데 전체로 본다면 그 관계는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얼마 전 프랑스 정부에서 IS대원의 자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테러 피해 유가족은 "가족을 테러로 잃었지만 우리도 부모입니다. 우리가 인간성까지 잃어선 안 됩니다"라며 프랑스 정부의 결정을 찬성했습니다. 유가족이 IS대원과 그 자녀를 절대 용서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유가족은 IS대원과 그 자녀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들을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스트의 자녀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인: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날씨도 새벽 다르고, 오전과 오후가 다르니 '어떤 것을 오늘 날씨라고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마음을 놓치고는 온전함도 정의도 멀어질 수밖에 없겠네요. 그 사람, 그 일을 전체와 부분과 변화로 보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2019년 4월5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