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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상사 특별인터뷰] 건강하고 활기차며 화합하는 교단 오직 염원
[경산상사 특별인터뷰] 건강하고 활기차며 화합하는 교단 오직 염원
  • 안세명 편집국장
  • 승인 2019.04.03
  • 호수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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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안세명] 지리산을 병풍 삼아 봄꽃 향기 가득한 계절, 원불교신문사 직원들이 남원 운봉 상사원을 찾았다. 깊은 솔향에 꽃잎 아래로 드리우는 수양매(水楊梅)를 바라보는 헌거로운 도인. 그곳에서 경산 장응철 상사(耕山 張應哲 上師·80)를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 운봉, 지혜의 덕성이 가득한 곳
서늘해서 참 좋다. 커다란 소나무가 30주나 되고 5층 높이 전나무가 그늘을 만든다. 운봉(雲峰)이란 말이 참으로 시적이다. 이곳 지리산은 '지혜 지(智)'에 '다를 이(異)'자를 쓰니 '세상과 다른 지혜의 산', 그래서 문수도량이라고 한 듯 하다. 지리산의 치마폭이 넓으니 모든 생명을 풍족하게 살려낸다. 마치 부처님의 자비 마음과 같다.

내 동기들보다 10년 더 일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오니, 이제 80이다. 10년 더 일한 삯으로는 너무 큰 홍복을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일생 60년을 아침에 심고하고 좌선하고 경전봉독하고, 낮에는 보은봉공하고 저녁에는 참회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지금도 똑같다. 아침에 선을 마치면 한두 시간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가졌다. 반드시 경전을 봉독하며 사리연구를 했다. 

정신이 맑을 때 법문 준비도 하고 말거리도 장만하고 아침 뉴스도 시청한다. 그러면 식사시간이 된다. 전에는 낮에 사람들을 접견하는 업무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좀 줄었다. 한가한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요즘에는 저녁에 음악을 많이 듣는다. 붓도 많이 잡는다. 그림도 그리는데 묵화나 산수화 같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니까 이제 늙었더라. 눈도 침침하고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틈틈이 글씨를 써서 수양도 하고 법문도 음미하려 한다.

얼마 전에는 하동 섬진강 매화마을로 매화를 감상하러 갔다. 아마도 이것은 개인의 취향문제이기는 하지만 내 생에 일부러 꽃구경 가긴 처음인 것 같다. 마치 춘설(春雪)과 같이 꽃이 만개했더라. '이것이 눈이냐, 매화냐. 허허…. 나도 이런 때가 있구나' 싶었다. 일생을 일 중심으로 살았기에 모처럼 수도원 식구들과 소창도 하고 매화 몇 그루 사다가 뜰 앞에 심었다.

그래서 부처되기가 어려운가 봐
서울교구 사무장을 할 때, 점심을 먹고 인사동을 자주 들렸다. 그러면 그림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가격을 물어보면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화보를 많이 모았다. 화보를 자주 보다 보니 안목은 좀 생긴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직접 그리는 것은 잘되지 않아 괴로웠다. 눈은 높고 실력은 못 미친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좋은 작품을 보면 그리고 싶고 가지고 싶다. 욕망이 그렇다. 열심히 그려 보지만 생각만큼 안 된다. 아는 것과 실제 할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는 것이 100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은 10만이라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마음공부도 교리공부도 경계를 대해 막상 교법을 실천 해보려 하면 잘 안 된다. 굉장한 공력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실행하는 것이 참 어렵다. 아는 것을 실행에 옮겨서 나의 인격과 생활이 진급되어야 한다. 그래서 부처되기가 어려운가 보다.

나는 석양을 걷는 노인이다. 
요즘 반추(反芻)를 많이 한다.
나이 들면서 멸도(滅度)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지나간 일들을 지우고, 

마음에 둔 것 있으면 깨끗이 씻고 
후생을 생각하고 그래야지

무구락(無求樂), 
구함이 없는 즐거움을 누려라

우리 수도인들은 일생을 사업장에서 살고 있다. 때론 유유자적한 유희장으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방랑도 하고 싶고, 그런데 아직은 우리 교단 사정이 그런 처지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안주처를 삼는 일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안주처를 삼으려면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몸과 상의해야 한다. 그동안은 사리연구와 작업취사를 많이 했다. 정신수양에 더욱 공들이려 한다. 신경 쓰는 일을 가능한 줄이려 한다.

'무구락(無求樂)'이라는 말이 있다. 구함이 없는 즐거움이다. 구할 때 얻어지는 즐거움은 상대적이다. 안되면 괴로움을 동반한다. 그 구하는 마음을 낮춰서 조절하면 구하는 마음 때문에 괴롭지 않을 수 있다.  '구하지 않을 때의 즐거움'은 자성공부를 많이 하면 얻어지는 지락의 경지이다. 

자신이 처한 그 곳을 안주처로 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면 다음 생에도 연결되고 무량한 여유도 생긴다.

인생을 정리하는 집필계획이 있으신지 
영산선학대학교 있을 때부터 교수를 했다. 메모를 많이 했다. 반드시 먼저 준비해서 메모한 것을 머리에 익어지도록 연마해 원고를 보지 않고도 법문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20년 정도 모아 놓은 자료를 요즘에는 다시 반복 학습한다. 그것을 보고 '그때 그런 훌륭한 생각도 했구나. 이런 어리석은 생각도 했구나' 한다. 그리고 지난 12년 동안 녹음한 것이 많다. 이것을 아궁이로 보내야할지 생각중이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잘 안보니까.

지금까지는 말씀에 대한 번역을 주로 했다. 나는 내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대종사님과 역대 스승님들과 어른들 말씀을 전하는 것이 내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든지 내 단어를 쓰더라도 항상 교법에 전거(典據)를 했다.

나는 대개 10년 이상 준비해서 책을 내놓는다. 〈도덕경〉은 한 20년 읽은 것 같다. 한때 대산종사님께서 〈도덕경〉을 보라시며 "앞으로는 서울 가서 방귀께나 끼는 분들 교화하려면 문자를 좀 써야한다"고 말씀하셔서 그 뒤로는 〈도덕경〉을 참 열심히 봤다. 내가 청주교구에 있을 때 원문을 보면서 적어 놓은 메모를 모아서 서울교구 있을 때 책을 썼다. 확신이 서지 않은 글은 휴지이며, 머리를 뜨겁게 해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했다. 

〈도덕경〉을 번역을 하는데 한 10권을 샀다. 반드시 내가 먼저 생각을 하고 연마한 뒤에 나와 같은지, 다른지를 대조했다. 그 사람 것을 먼저 보면 그 사람의 것이 내 안에 들어와서 지배되는 것 같았다. 다른 책도 다 그렇게 썼다. 대종사님 밝혀주신 교법적 관점에서 쓰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학생 시절 청소를 해 드렸는데,  〈육조단경〉 프린트본을 주셨다. '보란 말씀인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끔씩 보곤 했는데, 간사시절 응산 이완철 종사께서 금강원에서 교무들에게 〈육조단경〉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때 나도 들었다. 모든 것이 금방 한 것이 아니다. 오래오래 걸린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서울교구에 있으면서 3년 동안 교리학교를 했다. 화요공부방이라 해서 봄, 가을 그렇게 10주를 〈일원상서원문〉, 〈참회문〉, 〈금강경〉, 〈반야심경〉, 〈목우십도송〉, 〈수심결〉 여섯가지를 공부했다. 그때는 아주 정교하게 준비를 했다. 그때 교무 한분이 타이핑을 해서 그것을 기초로 정리하여 책이 나오게 됐다. 책을 많이 낸 셈이다.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보조 지눌스님을 가끔 떠 올린다. 지눌스님은 '알 지(知)'에 '말 어눌할 눌(訥)'을 쓰는데 법명이 이상했다. 말이 많은 것은 그리 좋지 않다. 눌변(訥辯)할 줄 알아야한다. 〈도덕경〉에 '다언삭궁(多言數窮)' 이란 말이 있다. "말을 많이 하면 어려움이 생기니, 불여수중(不如守中)이라, 참마음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학생시절, 신도안에서 대산종사님을 모시고 사는데 한가하실 때, "너 무슨 책 봤냐?" 물으셨다. "〈장자〉를 읽고 있습니다"하니까 "그러냐. 그거 오솔길이다. 신작로는 〈정전〉이다"고 말씀하셨다. 장자가 참 호방하고 멋있게 살았다면, 노자는 대단히 진지하고 진솔하며 아주 격조 높은 도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노자가 지금 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기주도적 수행적공에 안목 열려야
글 쓰는 사람은 대개 자호(自號)를 갖는다. 영산에 살 때 호를 지으려는데, 내가 그때는 말이 좀 적고 그러니 우성(牛性)이 있나 싶었다. 원불교에 들어와서 보니까 일이 많은 집인 것 같아 밭갈 경, '경우(耕牛)'로 지었다. 그래서인지 일을 참 많이 했다.

이곳 운봉으로 내려와서는 경우를 떼고, 풀밭의 한가한 소를 뜻하는 '초우(草牛)'로 하려했다. 그러다가 처음 초, '초우(初牛)'로 정했다. 본래자리로 돌아가 '아이 소', 어린 송아지가 되려 한다. 또 운봉에 사니까 '운봉학인(雲峰學人)'도 괜찮겠다 싶다.

나는 글씨를 배운 적이 없다. 서울 사무장할 때 글씨를 쓰고 싶어 학원에 등록을 두 번 했는데, 바쁜 일이 생겨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사다가 놓고 틈나는 대로 쓰고 또 썼다. 그렇게 달마, 포대화상도 연습해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필요해서 공부하면 잘된다. 일생을 자기주도적으로 살아야 행복하다. 출가위, 대각여래위를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자기가 해야 한다. 부처되는 큰 틀은 내주셨지만, 자기주도적 수행적공을 할 때 안목이 트이고 실제적인 공부가 되어진다. 그러나 경험있는 선지자에게 언제나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괴물도인이 되는 수가 있다.

평소에 일관된 생각이 있다. 
교단이 건강한 교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활기 있게 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터에서 모두가 화합해야 한다. 

요즘 심고 모실 때 건강한 교단 활기가 넘치는 교단 

화합하는 교단이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원불교는 젊은 교단, 후진이 더 잘할 터
평소에 일관된 생각이 있다. 교단이 건강한 교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좌산상사께서는 "출가교역자들이 계문만 잘 지켜도 대접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교역자나 재가교도나 대종사님 심통제자가 되려면 병들지 않아야 한다. 교역자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은 병든 것이다. 

또한 교단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활기 있게 일해야 한다. 우리는 일하러 왔다. 다양한 일터에서 제생의세하는 보람으로 살아가자. 마지막으로는 교단의 남녀노소, 이런 일터, 저런 일터에서 모두가 화합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심고 모실 때 건강한 교단, 활기가 넘치는 교단, 화합하는 교단이 되길 간절히 염원한다. 우리는 젊은 교단, 청년 교단이다.

전산종법사는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마음을 잘 씁시다'를 선언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잘해야 건강해진다. 나로부터 시작한다. 

수학시절 대산종사님께서는 "너희들이 절에 가면 반야심경 잘하면 된다. 그렇다면 원불교에서는 뭐를 잘하면 되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속으로 '일원상서원문만 잘하면 되죠'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산종사께서는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를 알아야 한다. 상시응용 6조에 삼대력이 있고, 생활이 거기에 있다.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다. 앞으로 종교는 그래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재가출가 전 교도가 상시응용 6조 공부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대담=안세명 편집국장 asm@wonnews.co.kr
사진=정성헌 기자 jung@wonnews.co.kr 
정리=류현진 기자 rhj@w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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