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방안에는/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검노란 똥자국들/어머니 신산했던 세월이/방바닥 여기저기/이불 두 채에 고스란히 담겼네/어릴 적 내 봄날은/보리밭 밀밭에서/구릿한 수황냄새로 품겨났지/어머니 창창하시던 그 시절 그때처럼/고색창연한 봄날이 방안에 가득 찼네/진달래꽃 몇 잎 따다 깔아 놓아야지. <똥꽃> 전희식.

그의 시골집으로 가는 산 속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었다. 치매로 고생하는 팔순 노모를 모시기 위해 구입한 시골집. '움직임이 불편한 어머니가 똥오줌을 잘 눌 수 있게 하는 것이 집짓는 방식에서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던 시골집. 노모의 '똥꽃'이 피었던 그의 시골집에도 연분홍 진달래가 피었다. 그 시골집에, 이제는 혼자서 '땅살림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농부 전희식이 살고 있다. 

 

"마음농사는 그 자체로 살리는 일이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요, 마음을 짓는 농사다. 
농사를 짓되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않는 농사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을 기르는 농사다." 

전희식 지음·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15,000원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
글 쓰는 농부 전희식. 그가 '농사 너머의 농사'를 통해 내 마음의 행방을 알아채고, 마음 농사를 짓는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냈다. 그의 열 번째 책 <마음 농사짓기>. 그의 책은 어느 이의 말처럼 '줄기차게 자기성찰하며 발품 파는 땀내'가 있어 마음을 끈다. 그를 직접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책, <마음 농사짓기>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농사란 기르는 일이다. 씨앗을 심고서 기다리는 일이다. 비를 기다리고, 햇빛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며 그것들을 모시는 일이다. 기르는 것, 기다리는 것이 시간을 따라 흘러가되, 그것에 정성을 들이는 일이 농사다. 그 정성들임을 일컬어 '살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그는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가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농부는 도시에도 있고 농촌에도 있다. 학교에도 있고, 병원에도 있고, 촛불광장이나 공장, 바닷바람 드센 배 위에도 농부는 있다. 기르는 사람, 살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정성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이기 때문이다. 

모든 농사는 마음 농사로 통한다
심어서 기르고 살리는 정성이 필요한 온갖 일들에 두루 손품과 발품, 하다못해 말품이라도 파는 농부. 그의 '농사 너머의 농사'에는 '이웃 할머니와 어울리기, 마실 다니기, 동네 어른들 봉양, 농부의 시각으로 세상 바라기'가 소중하다. '환경 친화적 난방(땔감나무), 강아지 분양, 농사용품 재활용, 동네 쓰레기 청소'도 빼놓을 수 없다. '귀농 강연, 시민사회활동, 한울살림 활동, 한울농법 보급, 사회장 장례 치르기, 소농혁명운동, 동학 활동마음(영성)수행, 민주화운동 역사증언, 핵전반대 활동' 등 그는 전국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품앗이에 여념이 없다.  

개인적인 활동이든, 긴급한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활동이든 모든 '농사현장'에서, 그는 언제나 거리감을 잃지 않고 반성과 조심을 거듭한다. 그 하나하나가 바로 '마음 농사짓기'다. 분명히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서도 그는 관성적으로 사람과 사건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경계한다. 뿐만 아니라 사물 하나 하나에도 그의 마음은 소홀하지 않는다. 그가 이해하는 생태와 환경은 사람관계와 마음 씀씀이까지 포함하는 것. 감정과 느낌에도 생태원리가 작용되었으면 한다는 그는 가는 곳마다 기다려주고, 함께해주고, 살리고, 기른다. 그 갈피, 순간마다 그는 '나를 알아챈다.'

마음농사는 나를 알아채는 시간
"마음농사는 그 자체로 살리는 일이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요, 마음을 짓는 농사다. 농사를 짓되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않는 농사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을 기르는 농사다." 그는 스스로 정의하기를, 마음 농사짓기는 모두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마음농사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끝내 각 개인의 몫이다. 자기의 업력만큼 마음농사의 자양분을 확보할 수 있다. 마음농사 자양분은 누구나 갖고 있는데 그걸 알아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각자의 몫으로 자양분이 있고, 업력만큼 있는 것이니 알아채는 만큼 잘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나눈 소소한 이야기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는다. '소작농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우회적 질문임을 아는 그가 '먹고 살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기본적인 벌이가 얼마인지, 그만큼 벌면 나는 행복한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다소 불편함 속에 상상 못하는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불편함 속에 보석이 감춰져 있다." 불편한 게 친숙하고 재미있다는 그. 불편한 게 흔쾌하다는 그다. 

"영성적 추구와 생태적 순환을 위한 삶, 이 두 가지가 현대 인류의 과제이자 길이다. 개인적 삶의 두 가지 축은 영성적으로 깊어지는 것과 생태적 순환 관계 속에 나를 편입시키는 것이 되어져야 한다." 영성적으로 깊어지고, 생태윤리적으로 당당한 삶을 가치 삼는 그의 꿈은 무엇일까. 

"영성적 추구와 생태적 순환의 삶을 공유하는 소규모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공유주택, 공유재화 등 존재하는 것을 필요에 따라 조성시키는 작은 삶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다." 이제 그는 전체를 아울러 같이 사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마음 농사짓는 농부 전희식,  그가 인터뷰 말미에 남긴 말이다. "노동의 땀. 끝내 호미는 놓치 않을거다."

[2019년 4월12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