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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정성스런 신앙, 천리향으로 전하는 공심가
[신앙인] 정성스런 신앙, 천리향으로 전하는 공심가
  • 김세진 기자
  • 승인 2019.04.09
  • 호수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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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전북교구 신태인교당 박선자 교도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는 화창한 봄날 담타원 박선자(82·潭陀圓 朴善慈)교도를 만나러 신태인교당을 찾았다.

향긋한 천리향의 향기가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반갑게 맞이한다. 법당에 들어서니 올해 부임한 지현관 교무가 말을 꺼낸다. "1월8일에 교당에 부임해서 9일 아침부터 기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법당 바닥이 차가워 카펫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신기하게도 바로 다음 날 담타원님이 오셔서 저를 데리고 시장을 갔어요. 그런데 카펫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기운이 통하는구나 했죠."

박선자 교도는 원기58년 용각교당에서 황민정 교무 어머니의 인연으로 입교하게 됐다. 그의 삶은 원불교를 만나면서 세세곡절 교당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면서 평생을 살아온 정성 그 자체였다.

"결혼을 17살 때 했어요. 남편은 20살이었지요. 그런데 남편이 21살 때 군대에 가서 5년 후 제대를 했어요. 그때 시댁 식구를 뒷바라지하면서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가마니를 짜서 먹고 살았지요. 농사 짓고 품앗이하면서 6남매를 낳고 열심히 사니 살림이 조금 나아졌어요"

부군이 50세 넘어 열반하여 30여 년 넘도록 홀로 6남매를 키우며 살아온 그는 원불교 만난 즐거움으로 지금까지 법회에 빠지지 않고 직접 향과 초를 꼭 총부에서 구매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막내아들 9개월 때 원불교를 만났어요. 장세진 교무님이 순교를 오시면 막내가 마루에 기어 나와서 교무님 따라 '천지영기아심정' 영주를 따라 하곤 했어요. 그 아들이 커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은 미국 텍사스에 가서 교당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전화가 온다는 막내 아들 황민수 교도는 서울대학교 원불교동아리, 원불교인권위원회 활동과 서울교구 청년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미주동부교구 오스틴교당에 다니고 있다. 힘든 일 속에서도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하면서 40여 년 동안 교당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 힘은 무엇인지 물었다.

"난 항상 그래요. 대종사님은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 그 시골에서 태어나셔서 7세 때부터 의문을 가지시고 11세에 삼밭재에 올라 마당바위에서 기원을 올리셨어요. 그런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리고 지금은 장비가 좋지만, 그 시절에 바다도 막으면서도 밤에는 공부를 하셨어요. 대종사님을 생각하면 나도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숯장사, 엿장사 등 그렇게 정성스럽게 열심히 사셨던 것을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용각교당·상계교당·신태인교당 46년
인과의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공인

오로지 대종사님뿐이라는 그는 용각교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자녀를 위해 서울로 이사를 해 상계교당을 다녔다.

"아들, 딸 대학교 다니고 졸업하고 결혼까지 시키고 내려왔으니 10년 넘게 서울 생활을 한 거 같아요. 상계교당에서 정대안 교무님 따라다니면서 함께 교화도 하고 얼마나 재밌게 살았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시골에서 올라와 지하철도 복잡하고 어려웠어요. 그래도 물어보면서 잘 찾아다녔어요. 바자회 할 때는 교당에서 자고 그랬지요. 주무도 하고 법호도 그때 받았어요."

상계교당 때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서울에서 지낼 때 자녀들 몰래 일 다니면서 집안도 알뜰하게 살림하면서도 교당일 공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그는 한 가정에 머무르지 않는 공심가의 삶이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라고 해서 경로당에서 점심 식사 당번을 하면 조금씩 벌 수 있어요. 움직일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해서 1년이면 2~3백만 원을 모아 불사를 하고 싶은데 올해 3월까지만 일하게 되었네요."

예비교무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해 주고 싶어 나갔는데 자녀들의 만류로 이제는 쉬어야 한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대종사님 공사에 조금이나 보탬을 드려서 좋아요. 그 덕에 자식 식구들 다 잘살고 무엇보다도 제가 제일 행복해요. 지금은 교당 앞으로 이사 와서 교무님에게 식혜도 가져다 드리고 떡도 드리고 호박도 삶아서 드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아무리 돈이 있고 부자라고 해서 헌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살림에도 복을 짓고 받는 법을 아는 그는 인과의 이치를 몸소 실천하는 공인이다. 그의 세자녀는 미국에 있고 세자녀는 한국에 있다. 자녀들 안 보고 싶냐고 묻자 "오면 좋고, 가도 자기들 잘사니깐 좋아요."

혈육에 끌리지 않는 그의 삶은 교당 앞마당에 피어있는 천리향과 참 닮았다. 공사에 임하는 향기가 진해 천리를 가는 듯하다. 천리향 꽃향기가 천리를 가기는 어렵겠지만 사람꽃 향기는 천리도 갈 만큼 진하다. 담타원 박선자 교도를 만나서 공심의 향기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난다.

[2019년 4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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