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듯 너를 본다〉 도반이 시집을 선물해 주었다. 기사를 쓰면서 따뜻한 감성도 잊지 말라는 뜻이란다. 또,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곧잘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나의 성향을 알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주라는 뜻에서라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불만은 자신을 채찍질해 성장의 동력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론 너무 혹독한 비난의 칼날에 베여 한참을 쓰러져 있기도 한다. 

사람이 한결같으면 좋으련만, 난 아직 한결같지 못하다. 어떤 때에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처럼 감사로 충만 되어 행복하다.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행운이 나와 함께하는 것 같고, 이 회상을 만나 교무로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때로는 세상 모든 불행을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슬프고 괴롭고 자신이 못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부족한 것이 많아서 도저히 교무를 못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스스로에 대한 인식은 긍정과 부정을 넘나들며, 행복했다 좌절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런 날 보며 공부가 부족하다며 또 비난하려 든다.

그냥 부족한 것이 있으면 부족한 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부끄럽고, 감추고 싶고, 아픈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더 나아가 그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가는 것이 진정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닮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의 부족한 점들도 품어 안을 수 있음을 교화현장에서 실감했었다. 학생들을 보며 못마땅하게 생각돼 잘 수용되지 않던 것들이 바로 스스로 허용하지 않고 보기 싫어하던 내 모습들이었다.

우리 교단 역시 적지 않은 아픔이 있다. 물론 자랑스러운 점들도 많다. 하지만 좋은 모습들에만 주목하고, 아픈 현실은 보지 않으려는 것은 온전한 전체 신앙이 아닐 것이다.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교단 문제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거기에 비난의 화살을 쏘아 의기소침해지자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교단에게도, 국가에게도상처만 남기는 비난의 화살은 멈추고 싶다. 살리려는 비판인가, 죽이려는 비난인가. 혹독한 질책의 바탕에 뜨거운 대자대비가 함께 할 때, 비로소 '사랑의 매'가 될 수 있다. '실망이야!' 하며 등 돌리는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한심해!' 하며 무시하는 아만심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해 가고 싶다. 

대각의 달 4월, 서로에 대한 시비분별에만 밝아지는 교단이 아니라, 대자대비가 함께 커나가는 교단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2019년 4월12일자]

키워드

#원불교 #교단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