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일반적으로 강령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의 기본이 되는 큰 줄거리'이니, 강령은 그야말로 어떤 교리에 뼈대가 되는 가르침을 말한다. 대종사는 교법을 내놓으실 때, 늘 강령을 잡아줬다. 

〈정전〉 '교법의 총설'에서 사은과 삼학으로써 신앙과 수행의 '강령'을 정했다 하는 말이 처음 나오고, 〈대종경〉에서도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버리고 그 중에 제일 강령과 요지가 되는 화두와 경전으로' 연구력을 얻으라 했으니(서품 19장) 강령과 요지를 정하는 건 종교 혁신의 정신과도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분적으로는 사은과 사요 안에 또 강령을 뒀고, 삼학에서도 요지를 세웠으며, 따로 '사대 강령'을 만들어 아예 교리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게 했다.

〈정전〉에서 교리 전개의 순서에 따라 대부분의 교리에 일일이 번호를 붙이는 것은 종전의 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다. 줄글로, 쭉 이어서 전개하던 옛 경전들과 차이가 있다. 이는 전문 교재나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 방식인데, 매우 현대적이기는 하나 다소 건조한 느낌을 주는 이런 방식을 왜 선택했을까. 제목에서부터 강령을 포함한 각 항목과 조목에 번호를 매긴 건 아마도 조리정연하게 배열해 의미의 혼동을 피하고, 알기 쉽게 교리의 정수에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또는 문학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위주로 하여 불필요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지 않았을까.

사은은 모두 '피은'과 '보은'의 강령이 있다. 그런데 배은의 강령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배은에는 강령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강령 다음에는 '조목'이 나오는데, '배은의 조목'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강령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피은의 강령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있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드러내고, 없어서는 살 수 없다면 '그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 하는 문장과 '먼저 마땅히'라는 말이다. 이는 사은의 은혜가 얼마나 지중한가를 생각이라도 한 번 해보면 누구나 인증할 수 있음을 표현한 말이다. 다음으로 또 하나 반복되는 말은 '대범'이다. '대체로 봐서', 또는 '크게 봐서'라는 뜻이다. 앞에 드러낸 '큰 은혜'의 실체를 좀 더 구체화하여 보완하는 말씀인데, '천지 팔도'와 '부모 대은'과 '자리이타'와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이 담겨 있다.

보은의 강령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서술돼 있다. 천지 보은의 강령은 천지의 도를 체받아 실행하는 것, 부모 보은의 강령은 무자력자를 보호하는 것, 동포보은의 강령은 항상 자리이타로써 하는 것, 법률 보은의 강령은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다. 

천지의 도를 실행하고, 무자력자를 보호하며, 자리이타를 행하고, 순응하는 삶이 사은 보은의 삶이라는 걸 강령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곧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니 교리 전반을 잘 이해하기 위해 강령으로 교리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 핵심을 추어 잡을 수 있게 했으며, 종교의 번거한 교리를 혁신해 강령과 요지로써 쉽게 알고 쉽게 실행하게끔 한 것이 대종사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원경고등학교

[2019년 4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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