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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주역으로 만나다 63. 성리품 13- 무무역무무
대종경, 주역으로 만나다 63. 성리품 13- 무무역무무
  • 임병학 교수
  • 승인 2019.04.16
  • 호수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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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학 교수
임병학 교수

[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성리품' 11장에서는 "대종사 봉래 정사에서 제자들에게 글 한 수를 써 주시되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 하시고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하시니라"라 했다. 

먼저 시 한 수는 '변산 아홉 구비 길에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 구나! 없고 없고 또한 없고 없으며, 아니고 아니고 또한 아니고 아님이구나!'로 번역된다. 

'변산구곡로'에서 변산은 지명이지만, 〈주역〉의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에서는 진리의 끝자락에 있는 팔간산의 군자를 상징하고, 아홉 구비의 구곡은 무극(无極)을 본체로 작용하는 낙서(洛書)의 용구(用九)작용으로 이해된다. 굽을 곡(曲)에는 이십(二十)이 들어 있고, 길 로(路)는 족(足)과 각(各)으로, 낙서의 낙(洛)에 있는 각(各)과 서로 통한다.

'석립청수성'에서 석립의 석은 〈주역〉에서 간괘(艮卦)를 상징하여, 군자가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입지하고 있는 것이며, 물소리를 듣는 청수성은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즉, 뜻을 바르게 세운 군자가 하늘의 진리를 듣는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에서는 '이청천시(耳聽天時)'라 하여, 귀는 하늘의 운행원리를 듣는다고 했다. 

'무무역무무'는 무유무역무무(無有無亦無無)로 해석되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도 없고, 또한 없다는 것도 없다'라 하겠다. 〈정역〉의 '입도시(立道詩)'에서는 "고요히 만 가지로 변화하는 푸른 하늘을 보니, 54세에 비로소 하늘의 일을 보았음을, 묘하고 묘하고 가물하고 가물하여 현묘한 이치는 없고 없으며 있고 있어서 있고 없음의 중(中)을(정관만변일창공 육구지년시견공 묘묘현현혐묘리 무무유유유무중, 靜觀萬變一蒼空 六九之年始見工 妙妙玄玄玄妙理 无无有有有无中)"이라 노래했다. 〈대종경〉의 '무무역무무'와 〈정역〉의 '무무유유유무중'은 서로 절대 긍정의 참 경지에서 만나는 것이다.

무(無)를 〈주역〉에서는 "신(神)은 방소가 없고, 역(易)은 본체가 없는 것이다(신무방이역무체, 神无方而易无體)"라고 해, 현상세계에 드러나는 신은 정해진 것이 없고, 근원적 진리인 역은 본체가 없다고 했다.

'비비역비비'는 비시비역비비(非是非亦非非)로 해석되어, '옳다는 것과 그르다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라 하겠다. 즉, 옳다 그르다, 아니다 맞다, 네가 낫다, 내가 잘 산다 등의 시시비비(是是非非)로 보는, 그것이 아닌 것이다. 

무무역무무의 '사무(四無)'와 비비역비비의 '사비(四非)'는 인생의 요도인 사은(四恩)과 사요(四要)와 대응되고, 〈주역〉에서는 하늘의 사상(四象)과 인간 본성인 사덕(四德)과 서로 만나게 된다. '사(四, 넷)'는 근원적인 진리의 작용을 상징하는 수이기 때문이다. 또 사비(四非)의 한자를 합하면 죄(罪)로, 본질적 의미에서는 사은·사요가 아닌 것이 죄가 된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9년 4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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