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선 교무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보통급은 무엇인가. 입문의 단계다. 사찰의 입구에는 일주문이 있다. 이것은 성과 속의 경계다. 마음을 씻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기둥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마음의 근본 형태인 일심으로 불공과 수행을 하라는 의미다.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삶은 성화(聖化)된다.

일주문을 마음에 세움으로써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길을 걷거나 잠을 자거나 일을 하거나 나는 일주문 안에 있게 된다.

기독교 입문에서 세례를 통해 자신의 죄를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도 같다. 나의 의식은 완전히 새로워진 것이다.

보통급 10계문은 이 새로워진 나의 심신의 법당을 불법으로 채워가는 일이다. 법당 중앙에는 신앙과 수행의 대상인 법신불이 있으며, 앞에는 향과 초가 진설되고 있고, 그 사이에 꽃이나 화분으로 불단을 장식한다. 부처님 회상과 새롭게 계약을 맺은 것은 내 마음의 불단을 이처럼 가꾸겠다는 서약이다. 마음 가운데에는 법신불을 모시고, 내 육체는 지덕(智德)의 향기로 거듭나며, 나는 은혜와 자비의 꽃을 피워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불지(佛地)를 향해 전진하는 일만 남아 있다. 그곳에서 모든 불보살들이 두 손을 내밀며 기다리고 있다.

10계문에는 10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행간에는 보이지 않는 계문이 가득 채우고 있다. 계문은 진리와 나와의 대화의 통로다. 처음에는 지켜지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스스로를 질책함으로써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이 그렇듯 처음부터 프로의 경지에 갈 수는 없다. 쉬지 않고 하나하나 실천하는 중에 마침내 계문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진리와 스승으로부터 부여받은 이 계문은 불자로서의 삶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계문을 지킴으로써 우러나오는 마음의 충만함, 도약의 기쁨은 그 어떤 묘미에도 견줄 수 없다. 보통급에서 특신급으로 진급하는 힘과 자신감과 용기가 더불어 따라온다.

계문을 지키는 것과 함께 잊지 않고 수행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참회하는 일이다. 묵은 업장은 쉽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현실의 번뇌와 욕망 또한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결단과 실천의 의지야말로 향상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그 향상심에 기대어 자신의 무명과 결별하기 위한 노력의 자세를 참회를 통해 더욱 굳게 다져야 한다. 현애상(懸崖相·너무 높아 할 수 없다는 포기의 마음)을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연고 없이'라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삶 속에서 중도에 맞게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공존하는 사회적 현실에서 불법은 마음대로 실천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고는 진리에 이르는 '과정'을 용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생을 말며'는 많은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

최근 허용된 낙태, 가장 비인도적인 전쟁, 임종과 관련된 연명치료중단이나 안락사, 하늘이 부여한 생명을 끊는 자살, 열악한 환경 하의 노동자들의 죽음, 고통으로 죽어가는 동물실험, 생명규정과 관련된 배아줄기세포의 실험 등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불법의 가르침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생명의 존엄이 우선한다. 진리적 차원의 중도는 '불살생'이다. 연고는 세상을 불토로 만들어가는 진리적 진화과정의 일환이다. 보통급이 보편윤리와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광대학교

[2019년 4월1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