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수행공동체 변산원광선원 식구인 정도전 덕무, 박현심 원장, 박청화 교무(왼쪽부터).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생생약동하는 4월, 깨달음의 달을 맞아 자연이 베풀 수 있는 아름다움과 소태산 대종사의 자취를 더듬고 선진들의 생생한 모습을 읽을 수 있는 변산원광선원을 찾았다.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
변산 제법성지는 소태산 대종사가 봉래정사(蓬萊精舍)에 머물며 교법을 반포한 곳으로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위치해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중앙에 있다. 변산반도는 해안 쪽을 외변산, 내륙 쪽 골짜기를 내변산이라고 하는데 변산 제법성지 사적지들은 내변산에 있다.

변산원광선원하면 지금은 열반한 가타원 이순일 선진이 베풀었던 맛깔스런 공양이 떠오른다. 선원에 도착할 무렵 벚꽃 터널을 맞이하니 미륵보살의 정토극락인 도솔천의 내원궁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도솔천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외원은 수많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이라고 부른다. 도솔천에 들어가 부처가 되어 법을 만든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쁨일까 벅찬 감동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국립공원에 자리한 제법성지
선원에 도착하니 박현심 원장, 박청화 교무, 정도전 덕무가 반갑게 맞이한다. 올해로 7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변산원광선원 식구들의 모습에선 여유와 진중함이 느껴졌다. 박 원장은 "변산원광선원은 제법성지로서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직소폭포 월명암 등이 인접해 관광객이 제법성지를 거쳐서 가게 돼 자연스럽게 원불교 홍보가 된다"며 "연간 30만 명에서 40만 명이 다녀가고 내소사쪽은 70만 명이 다녀간다"고 말한다.

새 회상 교강 발표의 산실
〈원불교교사〉에 보면 소태산 대종사가 회상창립의 준비를 위해 휴양처를 물색하며 원기4년 3월 오창건과 함께 부안 봉래산(변산)월명암을 찾았다고 전한다. 원기5년 4월 대종사는 봉래산에서 새 회상의 교강을 발표하니, 이것이 우리회상 교리의 신앙과 수행의 표본인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이었다. 대종사는 이곳에서 교단 초기 인연들 특히 익산 총부(현 중앙총부) 건설의 인연들을 만나면서 원기9년(1924) 5월까지 기거했다.
 

"봉래구곡에 가서 성리의 맛을 체험하고 
 실상사 노부부의 실지불공 예화 등을 통해 
 체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법성지의  기운 느껴보세요"

성리 현장을 느껴보다
제법성지는 대종사가 제자들과 성리문답을 한 곳으로 곳곳이 성리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성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산종사가 월명암에서 실상초당까지 왕복 6㎞를 내왕하면서 대종사에게 밤마다 공부의 감정을 받았던 교당내왕의 실지를 보여 준 곳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서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는 시구를 읊었다.

"변산 아홉 골짜기에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없고 없으며 없다는 것도 또한 없으며, 아니고 아니며 아니다는 것도 또한 아니다." 이 시는 〈회보〉 제31호 법설 '무상대도(無上大道)'에 발표됐으며, <대종경> 성리품 11장에 수록됐다. 이 시구는 원기5년~6년(1920~1921)사이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소태산은 이 무비송(無非頌)을 읊은 이후 실상초당 기슭의 거북바위 옆에 석두암(石頭菴)을 짓고 주석하며 스스로 석두거사(石頭居士)라 칭했다.

박 원장은 "제법성지에 대해서 대종사가 머무른 이곳에서 몸과 마음으로 그때의 심정을 느껴보길 바란다"며 "봉래구곡에 가서 성리의 맛을 체험하고 실상사 노부부의 실지불공 예화 등을 통해 체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광선원은 원기63년 개인사찰을 정읍교당의 특별희사로 인수해 원기64년에 입주한 제법성지의 중심이자 훈련도량이다.

변산원광선원 역사
원광선원의 유래는 지역주민 교화에 힘쓰던 도전스님이 사적인 일로 이곳 원광선원을 원불교에 매각하게 되는데, 원기63년에 정읍교당이 중심이 돼 부속 임야와 함께 사찰을 인수해 현재 '변산원광선원'이 됐다. 원기77년에는 수양원에서 훈련원으로 개정, 지금은 '변산원광선원'으로 재가출가  교도들의 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원광선원의 인수는 교단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제법성지가 소실된 후 복원 및 관리에 특별한 진척이 없었는데, 변산원광선원을 바탕으로 변산성지의 장엄 사업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한 수행공동체
변산원광선원은 지자본위로 운영된다. 벅찰 수 있는 성지관리와 선원운영의 어려움을 행복한 수행공동체로 이겨내고 있다. 또한 부안지구 공동체로 원활하게 연대하며 박 원장의 교화력으로 지역사회와의 소통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훈련원 근무에 서원을 세운 박청화 교무는 "변산원광선원에 근무하면서 단 한 번도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저 수행일 뿐이다"며 "제법성지 성역화 사업을 통해 성지에서 법의 정신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부지가 성역화가 되면 최적의 홍보 장소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교강선포 100주년
아직은 변산원광선원만의 대표 훈련프로그램이 개발되지는 못했지만 전무출신 자율훈련과 성리훈련 현장교육 등을 계획 중이다. 올해는 교강선포 99년이 되며 내년에는 교강선포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어떻게 기념하고 이어갈지도 연마 중이다. 3대 말 원기108년이 되는 해는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가 이곳에서 10여 분 걸리는 곳에서 개최된다. 변산원광선원은 단일 교당 50여 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가족 단위 성지순례도 가능하다. 자연 여건이나 교통 등이 편리하여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관광지가 많이 있어 만족도가 높다.

미륵불회상과 용화회상이 둘이 아닌
박 원장은 "의외로 교무님들도 성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교도들뿐만 아니라 교무들도 이곳에 와서 성지순례를 하면서 서원도 다지고 포부와 경륜도 키웠으면 한다"고 말한다. 변산원광선원을 나서며 실상초당터와 석두암터를 들러 대종사가 머무른 이곳에서 그때의 심정을 느껴본다.

"여래는 도솔천을 여의지 아니하시고 몸이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으며, 어머니의 태중에서 중생 제도하시기를 다 마치셨다 하였사오니 무슨 뜻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실상사를 여의지 아니하고 몸이 석두암에 있으며, 비록 석두암에 있으나 드디어 중생 제도를 다 마쳤나니라."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에 도솔천에서 내려와 용화회상에서 설법하는 현장에 있는 듯하다.

원기4년(1919) 12월 실상사 옆 몇 간 초당에 거처를 정하고 이름을 실상초당이라 했다.

[2019년 4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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