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믿음은 진실한 것, 의심하지 않는 것, 귀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전에서 '범부와 부처가 동일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말씀을 내면화하고, 의문을 일으키지 않으며, 굳게 의지하여 올곧은 마음으로 수행 정진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일관된 사람은 반드시 불지(佛地)에 오르게 된다. 극락왕생을 목표로 하는 정토문의 믿음은 더욱 선명하다. 법장비구가 세운, '자신이 부처가 되었을 때, 중생들이 그 이름을 불러 부처가 된 자신이 있는 불국토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이 성취되었으므로, '나무아미타불(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이라는 염불은, 법장비구가 세운 서원과 그가 성취한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 염불인 것이다. 믿음은 극락왕생의 행이자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라고 하며, '일체의 선법(善法)을 장양하여 의심의 그물을 끊어 없애고, 애욕에서 벗어나 열반의 무상도를 열어 보인다'고 한다. 용수(龍樹)의 〈대지도론〉에서는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으며, 지혜가 없으면 피안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 제불조사의 반열에 올라간 사람치고 이 믿음에 의지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보통사람이 태평양을 몸 하나로 헤엄쳐 건너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이 발명해 낸 배나 비행기로 건너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지혜와 이를 계승한 조사들의 법문에 의지해 파란고해를 건너가는 일은 믿음이 결정한다. 대산상사가 특신급을 일초직입여래위(一初直入如來位)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신은 특별한 믿음, 뛰어난 믿음, 남다른 믿음의 뜻이 있다. 특신급은 일원상의 진리를 수용하고, 과거·현재·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추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정법에 대한 바른 믿음(正信), 진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깨끗한 믿음(淨信)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 마음이 점점 익어가게 되면, 믿음에 의한 이해(信解)가 깊어지고, 그 기쁨(信樂)이 늘어간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세상이 어떻게 보든 해탈이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 진실이 확고해진다. 삶의 의미가 명료해지고, 주체할 수 없는 열락(悅樂)이 솟아올라 저절로 시를 짓고, 저절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특신급 10계는 이러한 법열에 찬 자신을 주위에 드러내는 때에 주어진 삶의 법문이다.

이 10계는 사회윤리적인 측면이 강하다. 연기적으로 얽힌 이 사회를 통해 불법을 자기화 해가는 특신의 시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신이 맑아짐으로 인해 주위가 맑아지고, 주위가 맑아짐으로 인해 이 사회가 맑아지며, 마침내 지구와 우주 전체가 맑아진다. 그것이 불법의 묘미이며, 법마상전급과 3성위를 관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해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 정면으로 마주서게 된다. 특신급 10계는 이처럼 세계를 정화시킬 불자로서의 삶을 이웃과 사회로 확장시키는 단계다. 예를 들어, '신용 없지 말며'는 불법의 사회화와 다름이 아니다. 신용이야말로 불자들의 척도다. 평판과 인망과 덕망은 사회적 관계에서 최고의 가치다. 사회를 정토극락으로 만드는 부처는 이러한 가치를 구현한 분이다. 사회적 신용의 근본이 불법에 대한 믿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광대학교

[2019년 4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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