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정산종사는 가두선전을 포함한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건의하는 어떤 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비컨대 장사하는 사람이 상점에 좋은 상품을 준비하여 놓고 오는 손님에게 적당히 매매하여 대중에게 이익만 준다면 그 상점이 자연 발전되는 것 같이 종교의 교화도 모든 교재를 완전히 준비하여 놓고 누구에게든지 해를 주지 아니하고 이익만 준다면 자연히 발전이 될 것'(〈정산종사법어〉 경륜편2장) 이라면서, 과거에는 '형식의 선전'이 발전의 중심이 되어 왔지마는 장차 세상에는 '실지의 활동'이 발전의 중심이 된다고 했다.

정산종사의 이런 말씀은 '형식의 선전'에서 '실지의 활동'으로 전환하는 시대를 예측하며, '미륵불 세상이란 곧 근실한 세상을 이름이니, 종교도 그 교리가 사실에 맞고 자력을 주로 하는 종교라야 세상에 서게 될 것'(근실편 18장)이라는 말씀과 부합한다.

정산종사의 비유를 살펴보면, 장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좋은 상품'이다. 둘째, '손님에게 적당히 매매' 하는 것이다. 셋째, 대중에게 '이익만'을 주는 것이다. '좋은 상품'이란 '교법'이며, 교법을 담은 '모든 교재'에 해당한다. '손님에게 적당히 매매'한다는 말은 대종사의 교법을 실력 있게 잘 전하여 세상 사람들이 잘 받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며, '대중에게 이익만 준다'는 건 대종사의 교법이 가치를 발하여 생활에 실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산종사의 말씀을 '적극적인 포교'를 하지 말라는 데에다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면 곤란하다. 실지의 활동 없이 형식적인 선전만을 중시하여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빈약하여 볼 것이 없는 지경을 경계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야지, 다만 포교 자체를 소극적으로 하라는 말씀은 아니라고 본다. 도리어 우리는 이 시점에 이르러, 대종사의 '좋은 상품'을 손님들에게 잘 매매하고 있는지, 대중들에게 이익만을 주고 있는지,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게 우선 되어야 한다. 교화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 훌륭한 교법을 알아보지 못하는 대중의 박복함에 있다고 치부하는 행위는 제생의세의 본분사를 잊고 내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같다.

공도편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나오는데, '적극적인 포교도 좋지마는 대도 정법이라도 너무 강권하거나 지나치게 선전만 하면 가치 없이 인식하기 쉽나니, 포교를 하는 이는 먼저 상대자의 근기를 잘 살펴서 기연에 맞게 도를 권할 것이며 자신의 수행으로써 자연 중 권도가 되게 하여야 실효 있는 포교가 될 것이니라'하신 말씀도 경륜편 2장 말씀과 통한다.

생각하기에 '적극적인 포교'가 반드시 '형식의 선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법 장사'를 잘 하여 세상에 이익을 주고자 하는 '적극적인 포교'는 꼭 필요하다. 기도와 같은 진리불공에만 그치는 교화보다 사실불공과 병행하는 교화여야 한다. '좋은 상품'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무작정 손님이 알아보고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교화는 이제 움직이는 교화, 찾아가는 교화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정녕 '실지의 활동'을 바탕으로 '적극적이고 실효 있는 포교'가 행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원경고등학교

[2019년 4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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