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성리품 13장에서는 대종사 봉래 정사에서 모든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옛날 어느 학인이 그 스승에게 도를 물었더니 스승이 말하되 '너에게 가르쳐 주어도 도에는 어긋나고 가르쳐 주지 아니하여도 도에는 어긋나나니, 그 어찌하여야 좋을꼬'하였다 하니, 그대들은 그 뜻을 알겠는가." 좌중이 묵묵하여 답이 없거늘 때마침 겨울이라 흰 눈이 뜰에 가득한데 대종사 나가시사 친히 도량의 눈을 치시니 한 제자 급히 나가 눈 가래를 잡으며 대종사께 방으로 들어가시기를 청하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지금 눈을 치는 것은 눈만 치기 위함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현묘한 자리를 가르침이었노라"고 했다.

대종사께서 눈을 치는 것으로 현묘한 자리를 가르친 것은 2가지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대종사가 하늘의 진리를 대각한 성인임을 보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진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밝힌 것이다. 진리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삶에 있다.

도와 눈을 친 것을 <주역>의 48번째 괘인 수풍정괘(水風井卦)로 만나고자 한다. 정괘는 우물의 상징적인 뜻을 통해 진리를 논한 괘로, 서괘에서는 '정도(井道)'라고 해, 단순히 물이 나오는 우물이 아니라 진리가 솟아 나오는 곳으로, 13장의 도와 만나게 된다.

계사하(繫辭下)에서는 '정은 덕의 땅이고, 정으로써 의를 변별하고(정 덕지지야·정이변의·井 德之地也·井以辨義)'라고 해, 정도는 인간 본성의 바탕이 되고, 정의를 변별하는 기준이 된다고 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 땅에서 다시 솟아나는 곳인 우물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물을 공급한다. 우물은 인간의 도덕적 삶에 있어서도 하늘의 진리를 먹는 곳이 된다.

정괘의 괘사에서는 '정은 마을을 고치되 우물은 고칠 수 없으니,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가고 옴에 우물이고 우물이다'라고 해, 하늘의 진리가 솟아나는 정도는 만물을 기르는데 다함이 없다고 했다.

정괘의 구삼 효사에서는 '우물을 치지만 먹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퍼진다. 물을 길러서 왕이 밝아지면 그 복을 함께 받을 것이다'라고 해, 성인이 우물을 깨끗하게 청소하였지만 사람들이 먹지 않아서 슬퍼지고, 사람들이 물을 길러서 먹고 본성이 밝아지면 복을 받게 된다고 했다. 대종사 눈을 치는 것과 성인이 우물을 친 것은 모두 후세 군자를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성인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명덕을 밝히면 스스로 복을 구하는 것이다.(구왕명 수복야·求王明 受福也.)

구오 효사에서는 '우물에서 차갑고 시원한 샘물을 먹는다(정열한천식·井冽寒泉食)'라고 해, 진리에 목마른 구도자가 우물에서 차갑고 시원한 샘물을 마심을 밝히고 있다. 시원한 샘물을 마신 군자는 정괘의 이치를 통해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고, 서로 근면하게 한다.

우리는 대종사가 가르친 깨끗하고 시원한 진리의 샘물을 마음껏 마시는 성불제중의 인연이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9년 5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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