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시내버스 운전기사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그날 태종대 바다는 푸르게 반짝이며 눈이 부셨다. 따스한 봄날 담장아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햇살이 가득한 거리를 시내버스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영도에서 출발해 부산항대교, 광안대교, 벡스코를 돌아 2시간여 만에 다시 영도에 들어선 1006번 버스는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신한여객 차고지로 들어오고 있었다. 신한여객 소속 1006번 버스 6대 중에서 6번 차량 담당인 이재승(법명 수용·청학교당) 기사는 이날 마지막 순번이어서 오후 2시에 출근했다. 

앞 순번 기사와 간단한 교대업무를 마친 그가 하늘색 셔츠에 짙은 감색 넥타이 정장, 선글라스를 쓰면 출발 준비 완료다. 부산 절경의 핫 포인트를 감상하고 싶은 관광객이 많이 승차하는 낮 시간, 동명대학교 통학생과 벡스코 주변 직장인들로 버스 안이 꽉 차는 퇴근 시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이 뒤늦게 귀갓길에 오른 막차까지 세 차례 왕복한 후에야 하루를 마감하고 자정쯤 퇴근했다. 

"요즘은 버스 타면서 인사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서로 눈 맞추며 인사를 받아줄 때 사람사는 맛이 납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들이 참 많이 바쁘구나 느낄 때도 있고 사람들 한 가운데 있는 이 직업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신한여객에 입사한지 16년 된 그는 운 좋게도 마을버스 운전 1년 만에 입사했다. 요즘은 1종 대형 운전면허 취득 후 마을버스나 통근버스 등의 2년 이상 경력자라야 한다. 시내버스운송회사에 취업한다고 바로 전속기사가 되는 건 아니다. 1개월의 수습기간과 약 6개월의 예비운전기사 과정을 밟아야 본인 고정 버스에 배차되는 전속기사가 될 수 있다. 전속기사가 되면 버스 한 대에 두 명이 소속되고 노선도 고정된다. 예비운전기사 과정에서는 매일 어느 버스를 타게 될지 모르므로 개인 사물을 들고 다녀야하고 노선도 늘 바뀌니 긴장이 많이 된다. 

"1006번 버스는 급행 좌석이고 신규 차량이라 선호하는 버스에요. 그 전에 담당하던 66번 버스가 노후로 폐차될 때 마침 1006번이 신설되는 바람에 내가 맡게 돼 운이 좋았습니다."

2007년부터 시행된 부산시내버스 준공영제는 부산시가 기사 채용, 노선 조정, 배차권, 노선 폐쇄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운송 사업자는 노선별 운행 실적에 따라 적정 수입을 보장받는 제도다. 준공영제로 되면서 부산시가 재정 부담을 맡는 대가로 버스 이용자들의 환승 연계 편의성을 높이고 이용자 중심의 시내버스 노선을 개편하는 등 그야말로 시민의 발이 됐다. 

"준공영제 이전에는 전쟁터였어요. 회사에서 수입이 적으면 기사에게 압박이 들어오니 같은 회사 버스끼리도 경쟁이 돼 늘 과속하며 승객이 위험에 노출돼 있었죠. 이제는 무조건 '천천히, 안전하게, 친절하게'라는 지시가 반복됩니다."

 

신한여객버스 운전 16년, 안전하고 친절하게
음양상승·인과보응, 진리 무서워할 줄 알아야

그가 오래 전 88번 버스를 운전할 때 전설로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시장에서 장을 잔뜩 본 할머니가 88번 버스가 오는 것을 확인 후 몸을 구부려 바닥에 있는 짐을 머리에 이고 버스를 탔더니 다른 버스였다. 버스가 어찌나 빠른지 그 사이에 88번은 출발해 버렸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요즘에는 운전기사를 폭행하는 난폭한 승객에 관한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난폭한 승객을 상대할 때는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는 무조건 맞대응하지 않고 한 박자 쉬고 순리에 맡기면 됩니다. 그동안 경험이 쌓이다보니 자연히 음양상승과 인과보응의 진리가 딱 자리잡게 되더군요.두려운 곳이 있으면 함부로 못살잖아요."

오래 운전을 하다보면 차량사고나 인사사고 할 것 없이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지은 바대로 돌아오며 간 것은 오게 돼 있고 강자라고 잘난 체 할 것도 약자라고 주저앉을 것도 없더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공부 덕분인지 그는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잘 근무해왔다. 

"동료들이 처음엔 바보라고들 했지만 그렇게 싫은 사람도 그렇게 좋은 사람도 없더라구요. 특별히 안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흘러가고 주게 되면 딱 그만큼 돌아오는 것이 진리니까요."

그는 17년 전 입교 때부터 지금까지 청운회 활동에 열심이다. 올해 7월부터 52시간 근무를 하게 되면 쉬는 날이 더 많아지게 됐다는 그는 원불교 활동에 자주 참여할 수 있는 여유로운 근무환경이 가장 마음에 든다. 교구 청운회 활동, 유치원생 늦둥이 육아까지 촘촘한 시간을 쪼개 원광디지털대 한국어문화학과 졸업도 앞두고 있다.

영도에서 승차한 할머니 한 분이 벡스코를 돌아 다시 종점으로 와서 내린다. 집에 있으니 심심해서 나들이 나왔다고 하면서 다음엔 다른 승객들 데리고 오겠다고 인사하며 내렸다. 

"집이 덥다며 에어컨 때문에 버스 타러 오는 사람들, 노인, 학생, 직장인 등 누구든 원하는 곳까지 저렴하게 태워주는 일, 복 짓는 일이지요." 

[2019년 5월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