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서원 챙겨 감사생활 하도록 마음 챙겨
분별 내려놓는 자리, 지극과 지선이 둘 아닌 자리

[원불교신문=김대현 교도] 원불교 신앙을 받들게 된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머니 태중부터 시작됐다.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와 손잡고 연산교당을 가던 초등학교 때까지가 전부였었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신앙에 대한 의문 없이 지내왔고 대학을 마치고 서울로 무조건 상경했다. 그때 나의 스승은 금산 권도갑 교무이다. 그 때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나를 돌아보는 마음공부에 눈 뜨게 됐다. 그리고 그 인연 덕에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로 장애인복지관에 근무 중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좋은 일 하시네요. 힘드시겠어요. 오늘도 애쓰시네요"라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나는 왜 좋은 일을 할까? 힘든데…" 그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문구가 있으니 일상수행의 요법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이다. 하지만 막상 감사생활 해야 하는데 하면서 감사 일기를 쓰고 있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원망이 차곡차곡 쌓인다.

왜냐하면 아침마다 독촉하는 이용자들, 해결은 되지 않는 그들의 생활에 매달리고 아등바등 지역사회에 매달려 부탁과 거절을 겪으며 나의 마음은 경계를 따라 요란함의 절정을 찍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화를 누르고 다시 웃는다. 아니 웃는 척이다. 

나의 감사일기장 첫 페이지에 사회복지사 선서문이 적혀 있다. '하나,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라고 읽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엇이 나를 눈물이 쏟게 하는 걸까? 나를 괴롭히는 이용자들의 인권을 진정 지켜낼 수 있는가? 왜 나를 억누르고 공공의 이익만을 세워야 하지? 등의 온갖 경계와 저항이 따라 오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대종경〉 수행품 33장에서 문정규(文正奎)선진이 경계를 당할 때에 무엇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는지 대종사에게 질문한 대목이 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생각으로 취사하는 대중을 삼나니, 첫째는 자기의 본래 서원(誓願)을 생각하는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 가르치는 본의를 생각하는 것이요, 세째는 당시의 형편을 살펴서 한 편에 치우침이 없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라, 이 세 가지로 대중을 삼은즉 공부가 항상 매(昧)하지 아니하고 모든 처사가 자연 골라지나니라"고 했다.

수행품 말씀을 나의 입장으로 다시 살펴보면 사회복지로서의 사명이 나의 가치관과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일원상의 자리에서 분별과 주착을 하고 있지 않은지, 반복되는 일상이라 내 주견만 펼치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복지라는 직업관을 방패막이 삼아 요구가 많은 이용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귀찮은 사람, 괴롭히는 사람으로 나도 모르게 치부했던 것이다.

나의 스승인 권도갑 교무는 말씀했다. 2500년 전 부처님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집착에 있고, 그 집착을 없애는 법으로 팔정도를 설하며, 첫째가 정견으로 바르게 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소태산 대종사도 집착을 분별심과 주착심이라 했고 나와 너, 선과 악, 죄와 복, 고와 낙, 유와 무, 동과 정, 생과 사 등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정견이며 이를 분별해서 좋은 것과 싫은 것으로 나누고,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 할 때 어리석음이 나오는 것이라 했다.

결국 일원상의 그 자리는 분별을 내려놓는 자리. 지극과 지선이 둘이 아닌 그 자리인 것이다. 그동안 비교하며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괴롭힌 것에 부끄럽다. 그리고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나와 만나는 인연 속에서 경계의 바람이 불 때 마다 온 몸으로 받아들여 본다. 움츠러들어 있던 내 몸에 감사의 기지개를 켜고 봄날처럼 따뜻한 복지 세상이 펼쳐지길 희망한다.

/돈암교당

[2019년 5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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