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준 교무

[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꼰대. 아이들이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다. 4년 전 학교로 발령을 받게 돼 갑작스럽게 학교 교사이자 법당 교무로 일하게 됐다. 내가 꼰대가 되다니.

특히 학창시절을 일반학교에서 다닌 나에게 성직자가 있는 교립학교는 도무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원불교 교무가 있는 학교라니, 도대체 나는 여기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국어나 수학, 영어처럼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관심 있어 하는 과목이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으리라.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아이들은 10대의 싱그러운 시절을 모두 걸고, 잠과 건강을 포기한 채 좋은 성적이라는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좋은 성적을 받아도 좋은 대학에 갈지는 의문이고 또한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할지라도 좋은 인생이 펼쳐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포스트잇으로 좌우를 가린 채 앞으로 달리기를 요구받는다.

첫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을 1주일 앞두고 있는 시점이 되면, 성적이 없는 과목의 선생님들은 수업 대신 자습을 주곤 했다. 내가 가르치는 철학 수업과 종교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습을 기대하고 있었고 나는 고민했다.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시간 낭비를 시키는 것일까.

그때 문득 소태산 대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대종경〉 요훈품1장)

나는 꼰대가 되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성적을 이야기하고 입시를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이없게도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자. 점수가 아닌 마음을 이야기하고, 채찍이 아닌 여유를 선사하자. 그렇게 난 꼰대가 됐다. 그날 '내가 해보니까 말이야'로 시작하는 작은 경험담은 나를 그야말로 꼰대의 표본으로 만들었지만 그러면 어떠하랴.

요즘은 10년만 차이나도 정말 다른 문화가 형성되는 것 같다. 학교는 그야말로 청소년 문화의 최첨단이라 1년마다 달라지는 아이들의 감정과 사고방식에 선생님들은 적응하기 바쁘다.

백여 년 전 대종사도 결국 2천  5백여 년 전 석가모니의 말씀을 인용하신 꼰대가 아니었는가. 격변하는 시대 모두가 세계의 정세를 파악하고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기 바쁜 그 때에 2000년도 지난 성자의 이야기를 설파했으니 꼰대 중에서도 상 꼰대셨을 것이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나는 교실이 터져나가라 꼰대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고민한다. 그 이야기랑 내 인생이 무슨 상관이 있냐며, 공부 1시간 못해서 대학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늘도 공부한다. 과거 성자들의 꼰대가 아이들에게 지혜로 들릴 수 있기를 심원하기에 오늘도 꼰대로 학교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5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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