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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05. 솔성
원익선 교무의 현대문명과 〈정전〉 105. 솔성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9.05.09
  • 호수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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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솔성이라는 말은 〈중용〉의 첫머리에 나온다. 그 유명한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는 구절에 포함되어 있다. <중용>은 천도를 근거로 하여 인도를 세운, 유교의 핵심철학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즉 하늘의 본성이 만물에 부여된 것이 본성이고, 이 하늘마음을 잘 발달시키는 것이 도이며, 그 도를 구현해가는 수행이 바로 본받음이라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

솔성의 도는 이러한 〈중용〉의 깊은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우리 안의 불성을 솔성의 도로써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구현해 가는 것이다. 업장과 습관을 단계적이며 타율적인 방식으로 해소해 가는 계문실천과 한 쌍을 이룬다. 양자는 불성을 활발발(活潑潑, 물고기가 튀어 오르듯이 어떤 경계 속에서도 자유로운 도의 경지를 펼치는 것)하게 단련시키는 과정이다.

솔성에는 두 가지의 핵심 뜻이 있다. 첫째, 우리는 천지의 기운과 원리를 부여받았으므로 우리 마음이 올곧으면 천지도 바르게 운행된다는 점이다. 즉 만물을 화육시키는 법신불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우리 자신 또한 혼돈 속의 세계 질서를 바르게 세워갈 수 있는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은 진리를 실현하는 무한한 능력과 당연한 책무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한 순간도 도를 떠나 살 수는 없다. 법신불의 품에서 나와 법신불의 품으로 돌아가는 우리는 마땅히 이 땅에 진리의 세계를 구현하는 존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무명과 오욕칠정으로 물든 인간의 한계를 돌파하는 계문의 실천과 함께 진리적 성품을 있는 그대로 발현하는 솔성의 도를 실천함으로써 삶의 참된 주인공이 되자는 것이다. 순진(純眞)·무욕(無欲)·지선(止善)한 우리 성품의 근본에 입각, 모든 경계에 대한 무념행·무착행·중도행(〈대종경〉 교의품7장)의 일원상 진리를 이 세상에 드러내는 부처의 삶이 그것이다.

둘째는 동양의 최고가치인 내성외왕(內聖外王, 안으로는 성인을 이루고, 밖으로는 높은 학식과 덕망을 갖추어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것)을 실현하는 점이다. 즉 성불제중·제생의세의 삶을 이루어가는 것이 곧 솔성의 도다. 넓은 길인 대승불교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우리는 자신과 함께 이웃인 타자를 부처로 만듦으로써 자신과 이웃의 완전한 인격완성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나의 깨달음을 먼저 이루고, 나중에 이웃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성불제중을 시간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순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우주를 한 일가로 확대해서 볼 때는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이웃의 깨달음이 구현됐을 그때 비로소 나의 깨달음이 완성된다고 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 삶은 보다 진리적인 세계에 가까워진다.

법신불의 화현이자 형제자매인 이웃의 모든 존재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구 위 모든 인간이 피부색, 민족, 국가를 넘어 소통되고 일치하는 공통의 감성·이성·영성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결국 솔성의 도는 내면의 불보살을 그대로 현실화해 불토낙원을 구현하는 큰 길을 말한다.

/원광대학교

[2019년 5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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