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신(信)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原動力)이니라. 〈정전〉

최근 시험 기간을 맞이해서 한 학생이 내게 질문했다. "이제 시험 기간이 일주일 남았는데, 지금 시작하면 늦은 걸까요?" 참 귀여운 질문이다. 나는 당연히 지금 시작해도 변할 수 있다며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런데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드르렁'하고 코 고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아이들은 파도 거품처럼 웃음을 터뜨린다. 다소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자는 아이에게 다가갔더니, 이게 누군가! 아까 나에게 지금 시작해도 되냐고 질문했던 아이가 아닌가.

이 모든 상황이 한편의 시트콤과 같아서 웃음이 난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다시 한번 아까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주게 됐다.

"네가 아까 지금 시작하면 늦었냐고 물었었지? 객관적으로 지금 시작하는 것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선 늦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 인생에서 오늘 바로 시작하는 것은 가장 빠른 결심이란다. 왜냐하면, 어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지."

차근히 마음을 담아 웃으며 이야기를 해줬지만, 사실은 요즘 이런 아이들이 많아 마음이 아프다.

그 아이는 스스로 자신에게 답을 내려놓고 나에게 질문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미 늦었구나', '내가 해도 변화하지 않겠구나'하는 자신만의 결론을 만들어 놓고, 나에게 확인차 물어보는 것이니 그 얼마나 안타까운가. 내가 하라고 하거나 하지 말라고 하는 대답 여하는 염두에도 없고, 어차피 늦었다는 자기의 판단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창 시절, 믿음이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라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들었다. 그때는 이제 겨우 서원을 세우고 출가를 했으니 신심을 세우라는 꼰대 소리인 줄만 알았다. 신심이 있어야 무사히 졸업하니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인가.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리 신심만을 강조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가졌다.

그러나 요새 학교에서 가르치는 입장에 서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과정을 보니,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믿음이 너무나도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는 노력이 자신의 변화로 찾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없이 어찌 노력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아이들은 자신을 불신하고 아무런 변화를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 자기가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생겨날 수 있을까.

만약 콩을 심어서 콩이 나오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콩을 심을 사람이 그 어디에 있을까. 만약 오늘 하는 공부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믿는다면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 있을까.

신분의성의 진행사조가 만사를 성공하게 하는 열쇠라고 한 스승의 말씀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오늘도 자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고 꼰대 소리를 하고 있다.

전무출신이 되는 과정에 누차 신심을 강조하던 교무님들을 나는 꼰대 소리라고 인식했었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니.

아, 아무래도 꼰대를 벗어나기는 오늘도 틀린 것 같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5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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