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성 도무

[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실행 공부는 세게 해야 하는가 보다. 삼학 중 작업취사에 관련된 법문은 대개 센 말들이 붙는다.

〈정전〉 교의편 삼학 중, 작업취사의 목적에 보면 '우리는 정의어든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든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낙원을 맞아 오자고 했다. 또한 작업취사의 결과에도 '정의는 용맹 있게 취하고, 불의는 용맹 있게 버리는 실행의 힘'을 얻어서 취사력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수행편 12장 솔성요론 13조, 14조에도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실행'과 관련해서는 '기어이', '용맹 있게', '죽기로써'와 같이 매우 강한 어조를 사용하여 물러설 수 없도록 힘 있게 독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다.

또한 〈대종경〉에서도 그러한데, 수행품 2장에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취사력 얻는 빠른 방법으로 '정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것'과 '불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 솔성요론과 같이 '죽기로써'를 강조하고 있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와 같은 말 역시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는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수행품 58장에서도 '그런즉,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고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정과 혜는 '부지런히', 계는 '죽기로써'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실행 공부와 관련해서는 유례없이 강한 어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며, '철석같이' 굳은 습관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불같이'나 '철석같이'는 욕심과 습관을 표현하는 매우 적절한 비유다. 비록 수양력과 연구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욕심과 습관의 힘이 이토록 강하니 웬만한 실행 공부를 해가지고는 어림없다. 오죽 했으면 이런 비유를 사용하고 저런 말씀을 하였을까.

욕심은 매우 강한 생명의 자기보호 본능이며, 습관은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가운데 이뤄진 것이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실행 공부는 비유컨대 비만인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요요현상'으로 힘들어 하는 것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악한 경계에 흘러가서 처음 목적한 바와는 반대로 되기' 일쑤인데, 이는 '선한 일에는 습관 되기가 어렵고 악한 일에는 습관 되기가 쉬운' 까닭이다(〈대종경〉 수행품 30장). 

정산종사는 '가시나무는 쳐내도 다시 길어나는데, 지란은 길러도 죽기 쉽다'는 주자의 말을 빌려 '우리가 선은 하기 어렵고 악은 범하기 쉽나니 악심은 처음 날 때에 끊어버리고, 선심은 놓치지 말고 잘 배양해 수 만생 불종 선근이 뿌리 깊이 박히도록 힘을 쓰라'했다(〈정산종사 법어〉 법훈편 49장). 이 말씀을 놓고 보아도 실행의 힘을 갖추는데 따른 어려움과 실천의 중요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원불교를 흔히 '실천 종교'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로 욕심과 습관을 이겨내는 실행 공부를 무척이나 강조하고 요구한 대종사의 경륜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원경고등학교

[2019년 5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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