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성리품 17장에서는 '대종사 봉래 정사에 계시더니 한 사람이 서중안(徐中安)의 인도로 와서 뵈옵거늘 대종사 물으시기를 "어떠한 말을 듣고 이러한 험로에 들어왔는가." 그가 사뢰기를 "선생님의 높으신 도덕을 듣고 일차 뵈오러 왔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았으니 무슨 원하는 것이 없는가." 그가 사뢰기를 "저는 항상 진세(塵世)에 있어서 번뇌와 망상으로 잠시도 마음이 바로 잡히지 못하오니 그 마음을 바로잡기가 원이옵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마음 바로잡는 방법은 먼저 마음의 근본을 깨치고 그 쓰는 곳에 편벽됨이 없게 하는 것이니 그 까닭을 알고자 하거든 이 의두(疑頭)를 연구해 보라" 하시고 "만법귀일(萬法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라고 써 주시니라'라 했다.

〈대종경〉에는 만법귀일의 하나가 있고, 〈주역〉에는 일태극(一太極)의 하나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모든 작용의 근원이다. 

계사상에서는 "한번 음으로 작용하고 한번 양으로 작용하는 것을 도(道)라 하니(일음일양지위 도·一陰一陽之謂 道)"라 하고, "한번은 닫히고 한번은 열리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일합일벽 위지변·一闔一闢 謂之變)"라 하고, "하늘은 하나이고(천일·天一)"라고 해, 하나는 하늘의 수이고, 하늘의 작용이라 했다.

또 계사하에서는 "세상의 움직임은 무릇 하나에서 곧게 된다(천하지동 정부일자야·天下之動 貞夫一者也)"라고 해, 세상의 모든 작용은 하나가 된다고 했다.

〈논어〉에서는 '나의 진리는 하나로 관통한다(오도 일이관지·吾道 一以貫之)'고 했고, <맹자>에서는 '세상은 하나로 정해진다(정우일·定于一)'고 했다. 〈정역〉에서는 '십이익지(十而翼之)하고 일이관지(一而貫之)한다'고 했다.

만법귀일에서 돌아가는 하나는 '덕을 하나로 쓰고(항이일덕·恒以一德), 하나를 쫓아서 마친다(종일이종야·從一而終也)'는 항괘(恒卦)의 성인지도(聖人之道)와 만난다.

성인의 마음은 천지지심(天地之心)으로 마음의 근본이 된다. 마음의 근본을 깨치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을 깨우치는 것이다.

일귀하처(一歸何處)에서 하나로 돌아가는 곳은 일태극(一太極)이고, 〈맹자〉에서는 양심이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 했다.

하늘의 마음인 양심을 쓰면 편벽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로 돌아가는 것은 '일원의 진리로 돌아간다', '하늘로 돌아간다', '본성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간다'이다. 

따라서 마음을 바로 잡는 방법인 마음의 근본을 깨치는 것은 만법귀일과 짝하고, 편벽됨 없이 쓰는 것은 일귀하처와 짝한다.

우리는 대종사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의 근본을 깨우치고, 내 마음을 하늘의 마음으로 돌려서 치우침이 없이 사용해야 한다.

대종사의 높은 도덕은 천도와 지덕이 만난 천지도덕으로, 천지지심(天地之心)의 내용이 된다. 하늘의 마음은 도와 덕으로 드러난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9년 5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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