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찬송가의 세 번째 순서로 소태산 대종사님의 찬송가가 등장한다. 소태산 대종사님을 통해 법신불과 사은을 만나고, 이어 진리에 눈을 뜨게 해주신 주세불, 소태산대종사님을 성가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6장부터 이어지는 성가들은 주로 일반법회 보다는 6.1대재나 명절대재에서 부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찬송의 느낌보다는 추모의 마음으로 노래하게 되는데, 감사와 보은의 마음보다 그리움의 감정이 앞서지 않기를 주의하면 좋겠다. 

법신불의 은혜와 진리가 항상 나를 가피하시듯,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통해 항상 스승님을 뵈올수 있는 마음이면 좋겠다. 

7째 마디에 등장하는 페르마타(늘임표)에 관해 가창시 표현의 방법에 대해서 대중이 함께 노래를 할 때, 박자에서 많이 혼란스러움이 있다. 일반적인 음악에서 이 페르마타는 곡의 마지막에 등장하거나 악곡의 분위기가 바뀌기 전 예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늘임표가 붙어 있는 음표를 2~3배로 박자를 늘려서 부르라는 뜻인데, 음악 기호를 적용해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늘임표가 붙어 있는 부분만 갑자기 늘려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전문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해석을 다시 부여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늘임표에 대한 길이는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대개, 늘임표에 도달하기 전부터 음악의 속도를 늦게 하는 경향들이 있다. 성가 6장도 늘임표 이전부터 속도를 조금 늦추면 박자를 맞춰 넘어가는데, 어색함이 덜하리라 생각된다. 

사가 없이 불어주는 봄바람의 생명력처럼 소태산 대종사님의 교법을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 갈 수 있으려면, 다시 부는 영산춘풍과 같은 생명력 넘치는 신심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심에 생명력이 넘쳐날 때, 신앙의 대상과 스승에 대한 찬송은 더욱 힘을 얻고 빛나는 찬송이 될 것이다. 이 때에 비로소 성가음악을 통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영산선학대학교

[2019년 5월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