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최정윤 교무] 사람들이 마음으로 잠깐 고하는 것이 무슨 위력이 있을까 싶지마는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 허공법계에 스며들게 된다. 그러므로 조석심고 뿐 아니라 언제나 마음의 움직임에 주의해야 한다. 정산종사는 조석 심고를 일심으로 드리는 것이 큰 공부가 되고 큰 위력이 있음을 잊지 말고 항상 우주의 진리와 자신이 부합되어 크게 위력을 얻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세워져 있는가 대조케 한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된다. 특히 급속한 과학 문명의 발달은 옳음과 그름의 기준까지도 시시각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이 세상은 정답이 없다고들 말한다. 아니 모두가 정답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오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각자 눈에 비친 세상은 다를 수 있다.

지금 나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비록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사실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인식의 방향과 내용 및 결과가 달라진다. 이처럼 서로 다른 관점은 크고 작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누구나가 마음으로만 남을 위하여도 복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매 순간 누군가를 위하여 진심으로 내 마음을 내주고 이를 실천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신만의 세밀한 마음 챙김이 뒤따라야 한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보시고, 그를 도와 함께 기뻐한다면 그 얻는 복이 매우 크다는 수희공덕을 말하시자 한 제자가 "그러면 그 복덕이 다할 때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한 개의 횃불이 있는데 수천 백인이 각기 불을 붙여 가지고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힐지라도 원래의 한 개 횃불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처럼 그 복덕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신다.

이처럼 수희공덕이란 내가 직접 복을 지은 주인공은 아니어도 복을 짓는 주인공 옆에서 잘한다는 마음으로 그일 그일에 합심 합력하기만 해도 복을 받을 때는 똑같이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수희공덕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요, 이러한 수희공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곧 인과의 원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

정산종사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가 복 받기를 원하거든 형상 없는 마음에 복의 싹을 길러내라고 한다. 또한 반대로 벌 받기를 싫어하거든 형상 없는 마음 가운데 죄의 뿌리를 없애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데 여유를 두지 말고 엄하게 해서 마음 가운데 죄의 뿌리를 없애고, 남의 허물을 보는 데에는 여유를 두고 후하게 하여 마음에 복의 싹을 길러가는 공부인이 돼야겠다.

또한 일상 생활 속에서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 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피고, 다른 사람의 그릇된 일을 견문하여 자기의 그름은 깨칠지언정 그 그름을 드러내지 말며, 다른 사람의 잘된 일을 견문하여 세상에다 포양하며 그 잘된 일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으로 복덕의 싹을 키우는 가장 쉬는 방법이다.

/원광보건대학

[2019년 5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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