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원

감정이 왜 중요할까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남녀 어린이들에게 일정한 시간 안에 퍼즐을 맞추는 게임을 두 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첫 번째 퍼즐게임은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도록 쉬운 퍼즐을 제공하여 어린이들 모두가 성공하게 하였고, 두 번째 퍼즐게임은 정해진 시간 안에 누구라도 성공할 수 없도록 미리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게임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가뿐히 퍼즐을 맞춘 모든 어린이들은 얼굴에 기쁨, 뿌듯함, 희열을 가득히 내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게임에서 게임을 종료하는 알람이 울렸을 때, 게임에 실패한 모든 어린이들은 낙심한 표정, 창피한 표정, 딴청을 피우는 등 다소 난감한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었다. 

자, 진짜 실험은 이제부터다. 이와 같은 두 차례의 퍼즐게임을 실시한 후 연구진들은 어린이들에게 묻는다. 게임을 다시 한 번 할 건데, 첫 번째에 했던 퍼즐을 할 것인지 두 번째에 했던 퍼즐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까?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첫 번째의 퍼즐을 선택하였다. 왜 거의 모두가 첫 번째의 퍼즐을 선택했을까? 하기가 쉬우니까? 또 성공할 수 있으니까? 물론 이것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는 '감정'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쉬운 것이라고 해서 우리가 다음에도 그것을 또 선택하지만은 않는다. '나를 뭘로 보고...' 라는 생각에 오히려 쉬운 작업을 하면서 화가 날 때도 있다. 난이도가 쉽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첫 번째 퍼즐을 또 선택했다기보다, 

첫 번째 게임 후 그들이 느꼈던 기쁨, 뿌듯함, 희열, 혹은 칭찬받으리라는 기대감, 그리고 두 번째 게임 후 느꼈던 실망감, 당혹스러움 등이 그들의 다음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확률이 크다. 감정이 우리의 행동과정을 촉진시키기도 혹은 억제·회피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아주 잘 보여주는 국내의 한 유명한 심리 연구이다.

감정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지각하는 감정들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행동을 이끄는 어떠한 '감정'이 분명 그 안에 존재한다. 아무리 이성적이고자 하나, 그냥 덮어두거나 외면해 버린 나의 감정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의 결정에, 나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 습관적 행동, 자동적 반응, 그리고 후회의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반응자'로서의 삶이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감정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느끼고 표현하는 정서능력보다 추리하고 기억하는 생각능력을 우선시하였고 오히려 정서나 감정은 이성에 방해되는 것으로 치부하여 정서교육을 간과하고 소홀히 해 왔다. 최근 들어 정서적 유대와 풍요,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나, 여전히 정서적 흙수저들이 곳곳에서 힘들어하고 있음을 우리는 여러 통계자료들을 통해 확인한다. 감정을 다루는 부정적 방식이 대물림되어 온 탓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함을 우리는 날마다 목도한다. 

마음인문학연구소 유아 마음챙김 프로그램, 2018년 3월 처음 10분 명상을 시작할 때 아이들의 반응.
2018년 12월 10분명상 10개월 후 아이들은 명상훈련에 대해 안정된 자세와 적극적인 호감을 갖게 됐다.

제1·2세대 마음치유 
마음의 아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왔나

각 시대마다 이러한 정서적 부적응, 감정적 고통,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왔다.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귀신에 씌었거나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보고 주술적, 종교적 의식을 치뤘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정신장애가 심리적 원인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는 심리적 원인론이 제기되었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을 비롯한 무의식의 심리학적 움직임을 강조하는 다양한 정신역동적 치료가 등장하였다. 1920년대 행동주의 심리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정신분석 치료의 대안으로 행동치료가 대두되었고, 1950년대 인지심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치료법들이 개발되었다. 인지 변화에 초점을 맞춘 합리적 정서치료와 인지치료는 1970년대에 행동치료와 접목되면서 인지행동치료라는 흐름으로 지금까지 발전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치료들은 모두, 심리적 부적응이나 정서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왜곡된 인식을 지니며 이를 올바른 인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치료될 수 있다는 가정을 갖는다. 정신분석은 미성숙한 심리과정(원초아 또는 무의식)을 성숙한 심리과정(자아 또는 의식)으로, 행동치료는 부적응적 행동을 적응적 행동으로, 인지행동치료는 비합리적인 왜곡된 인지를 합리적인 적응적 인지로 대체하고자 한다. 사고나 명제에는 옳고 그름이 있으며 실상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사고가 적응적인 것이라는 서구적 사유방식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맥락 속에서 펼쳐지는 것인데, 과연 어떤 상황에서나 항상 적응적인 사고·행동 방식이 존재하는가? 개인의 심리적 경험은 무한하게 다양한데 어떻게 일일이 적응적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즉, 조작과 통제를 가하여 적응적 사고와 행동으로 '바꾸려는' 이러한 접근들은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컨대, 약 1분 동안 계속해서 코끼리를 떠올려보자. 1분이 지났으면, 또 1분 동안 이제는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도록 코끼리 생각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보자. 자,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과연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었는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고자 하건만 아마도 코끼리에 대한 생각이나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잠깐 떠올린 코끼리도 이렇게 잔상이 오래 가는데, 하물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분별하고 판단해 왔던 것들은 더더욱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제3세대 마음치유 키워드 
'알아차림' '마음챙김' '명상' 

아픈 마음의 치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동양 전통의 명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이유이다. 정신역동치료(제1세대), 인지행동치료(제2세대)에 이어 최근 제3세대 심리치료로 마음챙김 명상을 결합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발전하고 있는데, 심리적 경험의 내용을 바꾸려는 시도의 한계 속에 마음치유 동향이 제3세대로 발전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심리적 경험의 내용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을 바라보는 개인의 태도', 즉 메타심리적 태도가 마음치유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초점이 되어야 함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상에서의 마음공부, 그 마음공부의 사회적 확산을 염원하는 우리들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와 괴물 사이에 밑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구덩이가 있다. 구덩이를 가운데 두고 괴물과 나는 줄다리기 중이다. 만약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진다면 나는 이 구덩이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잡아당기고 또 잡아당긴다. 그런데 내가 힘껏 당길수록 괴물도 힘껏 당긴다. 내가 구덩이 끝으로 점점 더 가까워져 간다." 

우리의 삶은 이와 같은 상황으로도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자, 여기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인가?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밧줄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구덩이에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 사는 많은 이들에게, 특히 상처받고 지친 마음으로 힘들어 하는 주위 인연들에게 우리의 할 일이 너무 많다. '마음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메타심리적 태도는 우리들이 줄다리기에 몰두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 김일원(은진)

ㆍ명상심리전문가
ㆍ경희대 교육심리전공 교육학 박사 
ㆍ현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교수

[2019년 5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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