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교구 신마산교당 박영진 교도

합창단장·봉공회장 등 공도사업 30년
나를 성장시켜준 원불교 훈련법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이 몸이 보살되고 부처되도록 나아갈 뿐 물러서지 말게 하소서." 득도의 노래가 몸에 사무친 신앙인이 있다. 경남교구 봉공회장 영타원 박영진(70·永陀圓 朴永眞·신마산교당) 교도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어떻게 해서 들어오게 된 회상인데 제가 물러납니까. 예수쟁이가 들어왔다고 몸져 누우셨던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오롯한 교도가 됐거든요."

기독교 권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새벽기도에도 열성인 기독교인이었던 그가 철주의 중심을 붙잡게 된 인연은 남편(고 철산 구동명)이다. 함안교당과 신마산교당 창립주였던 남편은 30대 때부터 교무가 자리를 비울 때면 대신 법회를 이끌 만큼 교리 실력이 뛰어난 신앙수행인이었다. 독실한 원불교 교도였던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 교도인 아내에게 한 번도 교당에 가자고 강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면서 한번 읽어보라며 〈예전〉을 두고 갔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어요. 두 아내를 거느리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사람 앞으로 지나가지 말라 등 세세한 항목들을 읽으며 정말 이대로만 살면 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은데 철산님이 딱 그대로였습니다."

〈예전〉 그대로인 남편이 너무 좋아 바로 입교한 것이 그의 나이 24세, 결혼 3개월쯤 됐던 원기58년이다. 그러나 지병이 있었던 시어머니는 그가 친정을 다녀올 때마다 예수쟁이한테 갔다 왔다고 앓아 누웠다. 심한 시집살이 속에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하며 첫 백일기도에 발을 담갔다. 시어머니 병이 깊어지면서 시누이가 그를 친정으로 쫓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임신으로 배가 부른 그를 친정에 휴양삼아 갔다 오라고 다독거린 것은 남편이었다. 

친정에 가 있던 20여 일만에 시어머니는 결국 열반했고 만삭의 몸으로 매일 49재를 지내면서 그의 신앙도 깊어지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시누이도 최근에 눈물을 글썽이며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손을 꼭 잡아주더군요. 그때는 제 서운함만 있었는데 이제는 당시 시누이가 사랑하는 오빠를 뺏겨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도 다 보이네요."

시어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시작했던 백일기도는 "기도는 맨입에 하면 안된다"는 남편의 지도에 따라 '기도비로 복짓기' 수행으로 4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수입이 많을 때는 만원씩 넣어 100만원이 모이고, 적을 때는 천원씩 넣어 10만원이 모일 때마다 주변의 어려운 인연을 찾았다. 

효자였던 남편은 친정 부모에게도 똑같이 잘했다. 기독교 권사였던 친정 어머니와 언니까지 입교하며 일원가족이 된 것도 남편의 정성이다. 그 남편이 지난 해 갑자기 열반하면서 그의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이 컸다. 의료 사고로 전신마비가 온 남편은 모든 의료진의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열반에 들었다. 마비 3일 만에 열반을 스스로 결정하고 일주일 만에 고통도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생사해탈에 든 남편은 수행으로 일관한 삶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떠났다.

"남편은 매우 존경스러운 신앙인이었습니다. 든든하고 자상한 남편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동안 받은 은혜를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 큰일 나겠다싶어 교단에 봉사하기로 다짐했습니다."

30대부터 시작된 그의 공중 사업은 신마산교당 봉공회장, 마산지구 봉공회장, 경남교구 합창단장, 경남교구 봉공회장 등으로 30여 년을 오롯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지부진했던 단체는 늘 그가 팔을 걷어붙이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봉공활동으로는 워낙 불모지였던 경남을 현재 위치에 올려놓은 공적을 인정받아 봉공회 40주년 행사 때 현직 회장으로는 유일하게 교정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종부로 30여 년 시댁 제사를 모시며 다져놓은 음식 솜씨는 경남교구 봉공회 주력 사업인 결혼이주여성 명절요리강습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독거노인·조손가정 세대반찬봉사, 마산의료원 안내봉사, 마산사회복지관 급식봉사, 포항지진·강원도산불·세월호 등 위기 응급봉사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경남교구 봉공회를 본 궤도에 완전히 올려놨다. 

"공중 일을 하면서 제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모두 원불교 훈련법 덕분입니다."

백년성업 대정진기도를 하면서 기도 정성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지금은 두 자녀가 장성해 사회에서 각자 자기 몫을 잘 해나가고 있어 더 바랄 것이 없다. 

"저를 원불교로 이끌어 주신 철산님을 위해 복 짓는 일, 앞으로 제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날 때 공부나 사업이나 둘이 나란히 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2019년 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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