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을 버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성의를 다 하자는 것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 가르쳐주신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은 각자의 근기와 경우에 따라 각각 그에 맞는 법으로 마음 기틀을 계발하는 공부입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으로 공부하고 일일이 문답하고 지도인에게 감정과 해오를 얻으며, 내 삶을 산 경전과 큰 경전으로 삼는 공부이기에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공부가 맞춤복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공부인: 원불교에서 마음을 공부하는 궁극의 목적은 '무아봉공(無我奉公)'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아봉공은 나를 없애고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내 가정을 돌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마음공부를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지도인: 〈정전〉 교의편 맨 마지막 부분인 '사대강령' 중 '무아봉공'을 얘기하는 거군요. '교의편'은 원불교의 교리체계를 다룬 부분이고, '사대강령'은 교의편을 매듭짓고 있는 실행 강령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공부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정전〉 원문에 대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전〉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과거 성인들의 가르침을 이 시대에 맞게 대중 모두가 생활 속에서 응용해, 마음을 공부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해석한 경전입니다. 그래서 무아봉공뿐만 아니라 공부법 하나하나를 용심법, 즉 마음을 사용하는 공부법으로 재해석해주셨습니다. 

'무아봉공'도 한자의 뜻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대종사님 말씀대로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인 용심법 〈정전〉 원문으로 공부하고 응용해야 올바르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무아봉공'을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을 버리고, 오직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 성의를 다 하자는 것이니라'고 정의해주셨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개인이나 자기 가족을 위해 일하지 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없애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을 버리고'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하는 생각을 주의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정산종사께서는 "자신에게 갊아 있는 부처를 발견하여 정성 들여 불공하라. 불공에는 자기 불공과 상대 불공이 있는 바, 이 두 가지가 쌍전하여야 하지마는 주종을 말하면 자기 불공이 근본이 되나니, 각자의 마음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은 곧 불공하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정산종사법어〉 제7권도편 13장). 

내가 부처인 줄 알고 정성 들여 불공하면, 내가 부처이듯 상대방도 부처라는 것을 알게 되고 불공도 되어집니다. 우리 가정이 소중한 것을 알면, 다른 가정도 소중한 것을 알아 전 세계 모든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오고, 그런 일을 하겠죠.

▷공부인: '나를 사랑한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무아봉공'은 나를 없애고 공익을 위해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군요. 나와 내 가정에서 시작된 사랑을 내 이웃과 세상의 모든 가정으로 넓혀가는 거군요. 

▶지도인: 그렇게 될 때 자유 방종하는 행동이 버려지고,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데 성심 성의도 다 해지게 됩니다.

▷공부인: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정을 위해 일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타적 대승행'과 '일체 중생을 제도'라는 말이 저에게는 부담스러워요. 

▶지도인: ○○ 공부인이 말했듯이 나와 내 가정을 위하는 마음을 넓혀가는 것이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성심성의', 말 그대로 정성스러운 마음과 뜻으로 내 힘이 미치는 대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2019년 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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