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개벽학 정립의 전통과 인프라가 있는 연구기관
새로운 한국학으로서 개벽학 정립 필요

[원불교신문=조성환 교수] 지난해부터 원광대를 중심으로 한국학계에 커다란 파문이 일고 있다. 그 발단은 '개벽파'와 '개벽학'이라는 신개념의 탄생이다. 2014년에 해외에서 '개벽파'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역사학자 이병한이 작년 봄에 원광대 교수로 부임했고, 지난해 말에는 원불교학과 박사과정의 강성원 교무가 '개벽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창했다. 원불교를 안다는 사람 중에 '개벽'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벽파나 개벽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벽파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개화가 아닌 개벽을 주창하며 등장한 한반도의 자생종교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 선두는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고, 그것이 의암 손병희의 천도교와 증산 강일순의 증산교를 거쳐, 소태산 박중빈의 원불교에서 종합됐다. 여기에 개천(開天)을 주창한 홍암 나철의 대종교와 해방 후에 활동한 강대성의 갱정유도 등을 포함시켜서 '개벽파'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최제우와 강일순은 소태산이 '개벽의 선지자'라고 평가한 인물들이다. 이 개벽파의 사상을 유학이나 실학과 같이 하나의 '학'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개벽학'이다.

'개벽'에 '학'이나 '파'라는 글자 하나를 보태는데 무려 150년이 걸린 셈이다. 개벽파 개념의 등장으로 구한말의 한국사상계의 지형도가 척사파와 개화파라는 양자구도에서 삼자구도로 확장됐다면, 개벽학의 제안은 옹색한 종교라는 범주에 묶여 있던 개벽사상이 보다 열린 학문의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덕분에 이제 조선후기 사상사는 '실학에서 개벽학으로의 전개'로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한국의 개벽운동을 서구의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일어난 비서구지역의 '자생적 근대화' 운동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개벽파와 개벽학의 등장은 그동안 서구적 관점으로만 보아온 한국의 근대를 '한국'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려는 최근의 소장학자들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2017년에 국문학자인 유신지와 홍승진은 전통과 서구의 틀로만 이해되어 왔던 김소월과 이상화의 시를 '동학'이라는 개벽사상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2019년에 〈유라시아견문〉의 저자 이병한 교수는 자칭 '개벽파'를 선언하면서 서울에 '개벽학당'을 열었다.

지난달에는 원광대에서 열린 한국종교학회에서 '개벽'을 주제로 모두 9개의 학술논문이 발표되었는데, 허석 교무와 강동현 교무는 원불교를 '개벽불교'와 '개벽종교'로 자리매김했고, 이주연 교무는 〈대종경〉에 나타난 개벽적 성격을 분석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은 나에게는 불법연구회의 문제의식을 잇는 '개벽연구회'의 탄생으로 보인다. 1세기 개벽학에 공감하는 2세기 개벽학의 출범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21세기의 한국이 '다시 개벽'을 요청하고 있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해 원광대와 원불교는 과연 어떠한 응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아니 한국학계가 보기에도, 이러한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전통과 인프라와 동기를 갖고 있는 연구기관은 원광대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광대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한국학으로서의 개벽학을 정립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 역사적인 작업에 지방사립대의 명운과 미래를 걸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개벽운동에 원불교가 후원을 하는 것이다.

원광대 국문과가 중심이 되어 한국의 근대문학을 '개벽문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원광대 사학과가 주축이 되어 한국의 근대사를 '개벽사'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철학과에서는 개벽철학을, 교학과에서는 개벽종교학을, 의대에서는 개벽의학을, 사회복지학과에서는 개벽복지학과 개벽노인학을, 경제학과에서는 개벽경제학을, 21세기의 통일학으로서 각각 정립해 보는 것이다. 나아가서 수덕호에 모시고 있는 사대성인의 동상 옆에 개벽의 선지자들의 동상도 함께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원광대가 개벽되어야 한국학도 개벽되고, 한국학이 개벽되어야 한반도가 개벽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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