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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원불교에서 배운 그대로 실천하는 불공인
[신앙인] 원불교에서 배운 그대로 실천하는 불공인
  • 김세진 기자
  • 승인 2019.06.11
  • 호수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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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교구 신흥교당 송성준 교도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원기14년(1929) 소태산 대종사가 처음 신흥교당을 방문할 때 이흥사 옛터를 둘러보고 수양지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절터는 초기교단부터 사과, 복숭아, 배 등으로 과원으로 운영됐다. 이흥과원은 본격적인 사업체제를 확립하여 전성시대도 있었으나 폐원할 위기도 있었다. 이러한 이흥과원을 30여 년 전부터 지극정성으로 관리한 교도가 있다. 바로 성산 송성준(75·聖山 宋聖俊)교도이다.

그를 만나러 이흥과원을 찾았다. 교단의 역사가 깊게 서려 있는 이곳에는 고려시대의 신천리 3층석탑이 있다. 국가지정 보물 제504호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모습으로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다른 돌로 조성돼 있다. 신천리 3층석탑은 1995년 탑을 해체, 보수할 때 땅속에 묻혀 있던 아래층 기단을 지상으로 드러내면서 석탑의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이곳이 종교적 명소였음을 알 수 있었다.

"원불교는 실천종교라고 생각해요. 교리도 중요하고 글도 중요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농사짓고 누에 키우느라 공부를 많이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많이 아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지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가 보인다.

"원불교를 만나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처처불상 사사불공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첫째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신조예요. 그렇게 하니 오히려 제가 행복해졌지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그는 원불교를 만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고 말한다. 원불교에서 배운 그대로 실천하는 그는 불공하는 자세가 가장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도양교당 원죽회원과 인연이 되어 원불교를 만난 그는 신흥교당에서 입교하여 법회를 보기 시작했다. "이양서 교무님 계실 때는 참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요. 훈련도 열심히 했지요. 단장도 하고 순교도 그때 하게 됐어요. 법회 끝나고 교도들과 재밌게 이야기하는 낙으로 살았지요."

 

이흥과원 운영 30년, 일상 속에서 행복 찾아
원불교는 실천종교, 불공하는 자세가 가장 기본

그는 현재 1만 3천여 평을 혼자서 관리한다. 농사를 짓고, 뽕나무를 키우고, 도라지와 인삼, 채소와 누에를 키우면서 30여 년을 지냈다. 그런 그가 매번 법회에는 차량 운전도 도맡아 한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농사는 100을 생각하면 일도 100을 해야 하는데 80을 생각하면 50, 60, 70을 할 수 있어 여유가 생겨요. 얽매이지 않는 게 중요해요"라고 답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꼭 내일 할 것을 생각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요. 그리고 일을 시작하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몰입을 하게 돼요." 30여 년 동안 과원을 관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하는 그는 '일이 없을 때에는 항상 일 있을 때에 할 것을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일 없을 때의 심경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무시선 공부를 실천하는 공부인이다.

"이곳은 산마루에 위치해 거친 바람으로 비닐하우스가 날아가는 등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저보다 오래된 35년산 뽕나무 200그루를 보면서 버틸 수 있었어요. 그리고 누에를 1년에 60장(1장에 2만 3천 마리) 놓는 사람은 전라남도에서 제가 유일할 거예요." 30여 년 동안 거친 바람과 함께 지내온 세월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의 생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생일독경을 꼭 한다며 원불교 만나 이흥과원에서 일한 공덕인지 부인과 4남2녀의 자식들 전부 무탈하게 잘 지낸다고 가족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가족 자랑에 이어 이호인 교무와 신흥교당 자랑도 빠지지 않았다. "격의 없이 소통해주시고 항상 베풀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신흥교당 대각전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는데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흥과원에서 묵묵히 관리만 했을 뿐인데 오히려 저에게 고맙다고 해 주셔서 감사하죠. 더구나 이곳이 세계적인 명상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뻐요."

전무출신 80여 명이 배출됐고, 영산과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설립된 신흥교당은 대종사 당시의 교당으로 터와 건물이 모두 남아있는 교당의 교도로서 자부심이 남다르다는 그는 교단의 역사와 함께 있다.

잠자리 들기 전 일원상서원문을 외운다는 송성준 교도에게 자신의 꿈과 원불교의 꿈을 물었다. "건강이 다 할 때까지 이곳을 관리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그리고 이곳이 대종사님 말씀 따라 수양지가 되기를 바라고, 원불교가 우리만의 교단주의적 경향을 벗어나 대종사님 근본정신이 더욱 실천되는 것이 꿈이에요."

바쁜 생활 속에서 행복을 바라보며 수용하는 마음 때문일까. 보물 석탑처럼 간결한 그의 미소와 목소리는 살아있는 보물이다.

[2019년 6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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