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는 분심을 이야기하곤 한다. 분이라 함은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니라. (〈정전〉, 팔조)

원불교학과 수학시절, 신분의성이라는 진행 사조에 대해 배우면서 의문이 종종 들곤 했다. 종교가에서 믿음과 의문, 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성냄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 때 어떤 분이 분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는데, 불교도 결국은 석가모니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하고 성문 밖을 뛰쳐나온 것이고 원불교도 대종사가 이 세상은 이래선 안 된다며 분이 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그러니 분심은 이용하는 자가 선용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성낼 분(忿)을 파자해보면 마음이 나뉘어 밖으로 표출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의 어떤 마음이 가득 차서 밖으로 표현되는 것. 그것이 도에 벗어나지 않으면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일갈이 되고, 자녀를 훈계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어느 날 못 보던 친구가 교실에 나타났다. 전학생인가 싶었는데, 야구부 학생이 부상을 당해 운동의 꿈을 접고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려고 왔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공부를 좀 도와주려고 했는데 이 친구는 두 자리 수의 곱셈도 한참이 걸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만을 해오던 친구가 갑자기 고등학교 수학을 풀 수 있을 리 만무한 것. 그래서 넌 초등학교 문제집부터 시작해야겠다며 이야기했더니, 그 다음날 진짜로 초등학교 문제집을 사들고 교실로 찾아왔다. 그 뒤로도 몇 가지 조언이나 과제를 내줄 때마다 그 친구는 보란 듯이 해오고 시도하여 준비해왔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장하기도 하고 혹 궁금하기도 하여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지금껏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된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친구의 대답을 들으며 마음 속에 큰 파문이 생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겪었던 환경과 좌절, 그리고 다시 공부에 도전하는 과정을 보며 느꼈던 묘한 느낌이 이제야 생각하니 참다운 분심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 친구는 그 뒤로 정말 열심히 했다. 늘 반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면서도 시험이 끝나기 바쁘게 도서관을 찾았다. 그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캐릭터가 그려진 초·중학교 문제집을 들고 가는 모습은 한편의 동화처럼 웃음을 자아냈지만, 그 친구의 모습은 충분히 멋있었다. 그 친구의 삶도 동화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대학입시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서울에 있는 체육교육과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운동을 하더니 뇌도 건강한 것 같다며 각자의 분석으로 토를 달았지만 곁에서 지켜본 나는 왠지 답을 알 것만 같았다. 그 친구는 정말 자신을 믿고 분심을 행한 것뿐이라는 것을.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도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누구나 하면 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누가 말처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까.

[2019년 6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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