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마음 가운데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이 풀어진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을 풀어줄 수 있나니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 가르쳐주신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은 각자의 근기와 경우에 따라 각각 그에 맞는 법으로 마음 기틀을 계발하는 공부입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으로 공부하고 일일이 문답하고 지도인에게 감정과 해오를 얻으며, 내 삶을 산 경전과 큰 경전으로 삼는 공부이기에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공부가 맞춤복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공부인: 가끔 뉴스를 보다가 썩어빠진 세상도 진리인가, 한탄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진리라면 바르고 옳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도인: 내가 나와 모든 사람, 이 세상을 볼 때 내 경험과 판단으로 보지 않고, '일원상의 진리'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원상 서원문'에서 '일원(一圓)' 즉 '진리'는 '변함없이 존속되는 진리의 본체적 측면(유상으로 보면)'과 '온갖 변화를 일으켜 전개되는 진리의 작용적 측면(무상으로 보면)'으로 볼 수 있으며, 두 가지 측면 모두가 무량세계를 전개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변하지 않는 측면에서 보면 진리는 항상 있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영원한 세월에 그대로 존속하여 (상주불멸 여여자연하여)무량세계를 전개합니다. 진리의 변하는 측면에서 보면 우주가 생성되고 머물고, 무너지고, 소멸하는 과정(成住壞空)과 모든 존재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生老病死)과 모든 생명이 몸과 마음의 작용을 따라 혹은 진급(進級)으로 혹은 강급(降級)으로 혹은 은혜가 해로움에서 나오는 것으로(은생어해) 혹은 해로움이 은혜에서 나오는 것(해생어은)으로 무량세계를 전개합니다. 진리가 전개하는 무량세계는 개인이나 사회가 세워놓은 기준에서 바라볼 때 좋다거나 바르다거나 하는 것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무량세계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법신불 일원상'은 앞에서 설명해주신 진리의 변하지 않는 측면과 진리의 변하는 측면에서 전개되는 무량세계입니다. '체받는다'는 것은 서예를 배울 때 글씨의 본보기를 그대로 따라 쓰면서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는 '무량세계를 체받아서'와 같은 뜻입니다. 

▷공부인: 그렇다면 온갖 추악한 면도 본받으라는 건가요?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해서라도 자기 자신의 이로움만 추구하면 된다는 건가요?

▶지도인: '체받는다'는 것은 안으로 우리의 마음이, 밖으로 이 세상이 '무량세계로 전개되어 있구나'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썩어빠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한 사람이 경계를 대해 악한 마음을 낸 것입니다. 

내 마음이 경계를 대하기 전에는 선하다, 악하다는 분별이 없지만(정한 즉 무선무악) 경계를 대해서는 능히 선할 수도, 능히 악할 수도 있다(동한 즉 능선 능악)는 마음 작용의 원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 그 사람도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대해서 한 마음 챙기지 못했구나'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나옵니다. 체험자는 비난할 욕구를 잊는 것처럼 말이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자기 마음 가운데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이 풀어진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을 풀어줄 수 있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대종경〉 요훈품 30장). 내가 경계를 따라 있어진 내 요란함, 내 어리석음, 내 그름, 내 짜증, 내 원망, 내 이기심 등을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진 마음이며, 내 마음의 무량세계가 전개된 것인 줄 알고 '내 마음 안에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하고 웃을 때 자기 마음 가운데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이 풀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경계를 따라 그런 마음을 냈을 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따라 그런 마음이 있어졌구나!'하고 그대로 받아들인 후, 그 사람이 마음 작용의 원리를 알아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습니다. 

/교화훈련부

[2019년 6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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