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동양에서는 우주가 음양의 상승원리에 의해 상생 혹은 상극의 기운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전자가 서로 살리는 기운이라면, 후자는 서로 충돌하는 기운이다. 가까운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전생을 들여다보면 그 원인을 잘 알 수 있겠지만, 그런 능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상생의 기운인 것 같으면서도 상극으로 돌아서는가 하면, 상극인 것 같으면서도 상생으로 나타나는 것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변방에 사는 노인과 말에 얽힌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행과 불행, 화와 복이 한결같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삶의 경험인 것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 사회와 사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치외교학에서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의 미국과 중국의 관계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면서도 가까운 관계가 국가 간에 일어난다. 때문에 유사 이래 지구에서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갈등과 분쟁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려는 증오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인간의 무명인 삼독심(탐진치)이 이러한 상극에 의한 갈등을 만들어낸다. 모든 것은 우리 자신에게로 귀결된다. 일관된 도심으로 공명정대한 진리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발현시킨다면, 인간과 사회의 고통은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국가와 같은 집단의 관계를 상극에서 상생으로 돌리는 것은 획기적인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히려 국가라는 틀보다는 지구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재정립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일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와 삼동윤리는 이 역사적 틀을 구성하는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은 그러한 세계, 즉 인류의 참된 진화를 위한 하나의 철학이다. 김영두 교수가 이야기하듯이, 이는 우주론적 철학과 변증법적 진리관에 근거하여 제시된 평화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론적 철학은 생성과 변화의 철학을 말한다. 강약은 우주가 탄생되어 진행되어 가는 하나의 현상이다. 하나였던 것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다시 하나가 되어 가는 연속과정이다. 변증법적 진리관이라는 것은 '은생어해 해생어은'처럼 자연 혹은 인간의 질서가 음양의 상대적인 흐름처럼 변화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과 진리관은 일원상 진리가 무량하게 펼쳐지는 우주적 현상이다. 그것을 포착해내는 것은 일심에 달려 있다. 우리 마음은 이 원리를 그대로 갊아 있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가 함께 진화해 가는 길은 공존과 호혜다. 공존은 강약이 서로 의존해 있음에 기반하여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호혜는 자리이타와 같은 의미다. 서로 도와 이익이 상대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키고, 약자는 강자를 선지식으로 삼아 강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는 어떤 분야든 해당된다. 이 진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강약의 뿌리가 궁극에서는 하나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야말로 배제와 지배의 논리가 된 사회진화론과 확연히 다른 진리적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원광대학교

[2019년 6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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