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 개체수 늘지 않지만
고통받는 곰 문제 해결은 아직
생명존엄을 망각한 문화
책임 느끼고 해결책 마련해야

[원불교신문=채일연 교도] 곰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어린 시절 곰과 관련된 동요를 배우지 않고 곰이 등장하는 동화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에 고조선의 건국신화에도 곰이 등장하며, 지난해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반다비'는 국내 서식종인 반달가슴곰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게 느껴질 정도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인지, 혹은 비뚤어진 것인지는 모르나 다른 의미로 곰에 대한 사랑, 정확하게는 웅담에 대한 맹신도 뿌리 깊다. 웅담이 자양강장에 좋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웅담을 이용한 보약은 물론이요, 술에 담가 웅담주로 마시거나 심한 경우에는 더 효과가 좋다며 살아있는 곰의 간에 튜브를 꽂아 담즙을 빼먹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맹신에도 불구하고 양방, 한방 그 어디에서도 웅담이 자양강장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실제 동의보감 등에도 웅담이 기생충을 막거나,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 데 좋다거나 황달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정도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나 한번 퍼진 맹신은 웅담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으며, 1981년 정부가 나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곰을 수입해 외국에 재수출하도록 장려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정부가 곰 수입을 금지하고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협약'(CITES)에 서명함으로써 곰의 수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그럼에도 웅담채취를 목적으로 키워지는 곰인 이른바 '사육곰'은 국내에서 일정연령이상 곰의 웅담채취가 허용되면서 2005년까지 그 개체수가 1,454마리까지 늘었다.

하지만 국제협약과 정부규제 속에서도 몸집을 키워가던 사육곰 산업에 치명타를 가한 것은 따로 있었다. 2000년대 발기부전치료제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보약과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웅담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면서 웅담가격도 동반하락하게 됐다. 현재 한약재 유통시장에는 웅담의 시세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한약재 유통업에 종사했던 지인에게 웅담가격 확인을 부탁하자 웅담이 아직도 거래되고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덕분에 사육곰의 개체 수는 크게 줄어  2019년 현재 30여 농가에서 52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정부가 2014년부터 추진한 사육곰 중성화수술 사업으로 더 이상 개체 수는 늘지 않는다) 케이지에서 고통받는 사육곰의 수는 더 이상 늘지 않지만 곰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줄어든 수익만큼 열악해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가 올해 진행한 사육곰 농가 현장조사 결과 많은 농가에서 사료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로 활용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식수가 공급되지 않아 배설물이 뒤섞인 웅덩이의 물을 들이켜는 곳도 있었다.

또한 청소의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대부분의 농가는 바닥이 아닌 뜬장에서 키우고 있어 발바닥이 갈라지는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지능이 높은 동물인 곰을 이렇게 열악하고 단조로운 공간에 가두어 키우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 정형행동과 같은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는 개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케이지 안에 있는 곰끼리 다투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치료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사육곰 농가에 대한 전폐업 지원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 곳 없는 곰들을 위한 생츄어리 건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사유재산인 곰을 정부가 나서 매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와 곰의 수입과 수출을 금지한 이후에도 번식을 통해 스스로 개체수를 늘려왔다는 점에서 농가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520여 마리의 사육곰은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망각하거나 이러한 문화를 방치했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나 하루하루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곰들을 되돌아본다면 하루빨리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여의도교당

[2019년 6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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