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중국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는 당의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과 송의 구양수(歐陽修)·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이다. 이 가운데 당의 한유(韓愈:대력 3년(768년)~장경 4년(824년)). 중국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정치가·사상가이다.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가 서세(逝世)한 뒤에 문인들이 〈한창려집(韓昌黎集)〉을 편집하고 서문을 써야 하는데 누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그의 사위가 되는 이한(李漢:자(字)는 남기(南紀)로 당조(唐朝)의 종실(宗室)이다. 옹왕(雍王)을 이은 이도명(李道明)의 육세손(六世孫)이다. 어려서 한유의 제자가 되어 고학(古學)에 통달하고 사람됨이 강직했다. 높은 벼슬도 했다)이 쓰도록 했다.

그가 쓴 서문의 첫머리에 '문자 관도지기야(文者 貫道之器也)'라 즉 '문장이라는 것은 도를 꿰(담는, 관통하는)는 그릇이다'는 의미이다. 비록 아무리 좋은 도가 있다할지라도 글자라는 기호를 통해 꿰놓거나 담아놓지 않으면 자연 후래에 전해질 수가 없고 따라서 전해지지 않으면 후인들이 보고 읽고 배울 수가 없게 되어 자연 묵어버리거나 소멸되는 길로 가고 만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부터 한자를 사용하는 범주에 들어있었다. 언어는 몰라도 역사의 기록이나 문서, 또한 저서 등은 한자를 통해 쓰여 졌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온 우리 교단도 자연 〈정전〉이나 〈대종경〉의 서투(書套)가 상당히 한문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언어나 글쓰기가 한자나 한문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한자를 모르면 법문의 어휘나 의미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심천(深淺)을 가늠하는데 있어서도 불편이 따를 수 있다.

지금이야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선어(禪語)나 공안(公案), 성리, 의두 등은 순 한자나 한문의 표현으로 압축되어 적은 언어나 글을 통해 의미를 무진장으로 갈무려 둔 법어들이기 때문에 한문을 모르면 알고 깨달음을 이루는데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깨달음이 문자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는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알아두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최소한 경전에 삽입되어 있는 한문을 익힐 필요가 있다. 전문적으로 갖추면 좋지만 시간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니 필자가 옛날에 펴낸 〈원불교정전 한자쓰기〉 상중하의 3권이 나와 있음으로 이를 익히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다.

송(頌)하기를
理體非文記(이체비문기) 이치 바탕 글로 기록되는 게 아니요
性源匪字書(성원비자서) 성품 근원 글자로 쓸 수가 없다지만
然而眞意韞(연이진의온) 그러나 참된 뜻을 감추어 놓았으니
勤學得醒攄(근학득성터) 부지런히 배우면 깨달음 펼침 얻으리.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19년 7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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