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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교무의 성가이야기 23. 12장, 어리석은 우리중생
이응준 교무의 성가이야기 23. 12장, 어리석은 우리중생
  • 이응준 교무
  • 승인 2019.07.03
  • 호수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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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교무
이응준 교무

[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타종교인이나 무교인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받는 질문이 "원불교와 불교는 뭐가 달라요"라는 것이다. 성가12장을 통해서 소태산 대종사가 원불교의 교문을 열 때, 불법을 주체삼은 이유와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해서 성가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성가12장은 일반적으로 대재나 석존성탄절에 성가 37장과 함께 불리는 의식용 성가로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늘 우리 마음속에 본래 부처님 마음이 있다고 하고, 그 마음을 알아가기 위해 마음공부를 한다. 그렇기에 불교를 떠나서 원불교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대종경〉 서품 2장에는 "서가모니불은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내가 스스로 스승의 지도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고 했다. 원불교 신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연원불로서의 찬송이라고 하면 우리 것, 또는 내 마음의 느낌에서 다소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과거 불법으로 삶은 고해의 바다며, 일체고를 넘을 반야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을 강조한 서가모니불과 불법에 연원한 완전무결한 법으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건설해 갈 것이라고 한 소태산 대종사는 결국 둘이 아님을 알아가는 부분이 또한 성가12장에서 거쳐야 할 부분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인류의 행복과 구원을 이끌기를 희망한다. 위안과 화합, 종교가 지향하는 공통점일 것이다. 이제 일백년을 넘긴 종교지만, 과거 서가모니불이 법을 펼쳤던 영산회상을 현재에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서 석존찬송가를 불러본다면, 그 느낌이 또 다르게 전해 올 것이다. 주체 삼아 새로 여신 법이 둘이 아닌 같은 법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6장 영산춘풍다시불어와 함께 들어보면 좋겠다. 성가 12장은 원기 25년에 '교가', '대종사 찬송가'와 함께 제정된 성가이다. 이들 세곡의 성가가 동시에 제정된 바에도 의미를 새겨보자. 

/영산선학대학교

[2019년 7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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